주님을 아는 지혜를 먼저 구합니다.
오늘은 하나님께 ‘내 백성을 재판하기 위한’
지혜와 지식을 구했던
솔로몬의 간구를 묵상했습니다.
아래는 그 말씀을 따라
손으로 써 내려간 묵상의 조각입니다.
그 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물으셨습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주랴?”
그는 주저하지 않고 “지혜와 지식”을 구했습니다.
백성을 재판하고 나라를 다스리기 위한 책임 앞에서
그는 가장 필요한 것을 구한 것이지요.
그 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지혜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생애는 결국 무너짐으로 끝납니다.
지혜가 부족해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충분한 지혜를 주셨고,
그 지혜는 실제로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러나 지혜는 '받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살아내야 하고,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의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으므로…”
— 열왕기상 11:4
이방 여인들과의 정략적인 결혼은
결국 솔로몬을 무너뜨렸습니다.
솔로몬은 그 지혜를 끝까지 경외함으로 품지 못했고,
화려한 번성 속에서 마음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지식이
단지 개인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목적 아래
부분적으로 공급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사람마다 받은 사명이 다르고,
그 자리에 필요한 지혜와 지식이 다르기 때문에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꼭 맞는 지혜를 주신다고요.
완전한 지혜를 가진 분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우리는 모두 유혹 앞에 연약한 존재이기에
그 연약함을 인정하며
매 순간 주님을 의지함이 지혜일 것입니다.
솔로몬은 왕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지혜와 지식을 구했습니다.
그 시작은 분명 옳았습니다.
필요를 아는 겸손이 지혜의 출발점입니다.
그러나 지혜는 경외함과 함께 살아내야 합니다.
경외가 무너질 때,
이미 받은 지혜도 흐려집니다.
지혜의 사용보다, 지혜를 지키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모든 것이 무너진 자리에서도
우리가 주님을 아는 지혜를 구할 때,
하나님은 다시 지혜를 주십니다.
그것은 화려하거나 빠르지 않지만,
조용히 중심에서 피어나는 회복입니다.
지혜와 지식으로 부귀영화를 누리던
솔로몬의 무너짐을 바라봅니다.
번성함 속에
무너짐조차 느끼지 못했을 그 순간들은
우리 모두의 연약함이기도 합니다.
주님,
주님을 아는 지혜를 먼저 구합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주 앞에 서게 하시고,
오늘도
주님 안에서 우리의 영혼이
안전하게 머물게 하소서.
따스한 바람이 불어도,
꽃이 피어도
우리는 웃지 않습니다.
오히려 눈물이 납니다.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의 번성함이
무너짐이었던 것처럼,
지금 우리의 무너짐은
어쩌면 회복의 시작인지도 모릅니다.
주님의 손을 잡고
평안하시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기쁨으로 돌아보게 될 것입니다.
무너짐에서 피어나는 중심
이 땅의 유혹과 무너짐 속에서도,
주님을 아는 지혜가 우리의 중심이 되고,
언젠가 그 지혜가 생명을 전하는 빛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 마음을 그림에 담았습니다.
이 그림을 보면
어둡고 무거운 질감이 먼저 시선을 붙잡습니다.
모든 것이 가라앉은 듯한 배경 속에서,
희미하지만 분명히 중심에서 뻗어나가는
생명의 결이 있습니다.
이것은 화려한 성공의 흔적이 아닙니다.
오히려, 무너짐에서부터 피어나기 시작한
기도의 움직임입니다.
언젠가 줄기를 내고 열매 맺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