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유언 앞에서 제가 선택한 제자의 길
오늘은 승천하시기 직전,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남기신 마지막 말씀을 묵상하였습니다.
그동안 이 말씀을 너무 잘 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예수님의 유언’이라 불리는 그 말씀.
하지만 조각들을 하나하나 다시 바라보다가
한 가지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세례를 베풀라”는 말씀은,
평신도인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우선 ‘그러므로’부터 멈추어 보았습니다.
바로 앞 구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이 권세 선언은
제자 삼는 사명의 근거가 됩니다.
예수님의 신적 권위에 힘입어
우리도 제자를 삼을 수 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다음으로 ‘너희는’이라는 말은
열한 제자만을 향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권세 아래 있는
모든 시대의 제자들—오늘의 우리를 포함합니다.
예수님의 유언은
복음을 전하고, 제자를 삼고,
세례를 베풀고, 가르쳐 지키게 하는 사명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세례’가 놓여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묻게 됩니다.
평신도인 내게, 세례를 베푼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세례는 단지 물로 행하는 종교의식이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상징하는 사건입니다.
새로운 존재 방식,
새로운 정체성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준다는 것은
그 이름 아래 살아가는 사람으로,
하나님의 통치와 공동체 안으로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 속에서 세례는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에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는 순간이자,
공동체의 품으로 들어오는 사건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다른 이를 제자 삼는 삶의 사명자가 되는 시작점이기도 합니다.
누군가를 믿음으로 초대하고,
그의 옛 삶을 놓아주는 과정을 함께 걸으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살아가도록 동행하는 것—
그것이 평신도로서 세례를 베푸는 모습일 것입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 믿음의 여정을 함께 걸으며,
삶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보여주고 있다면,
나는 이미 그 사람에게
세례의 길을 살며 전하고 있는 것일지 모릅니다.
삶으로 베푸는 세례.
그것이
예수님의 유언 앞에서
제가 선택하는 제자의 길입니다.
오늘의 기도
물 위를 걷던 베드로가 빠졌듯,
우리도 믿음 위에서 흔들리고,
두려움으로 가라앉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졌다" 하신
주님의 말씀으로 다시 섭니다.
연약함을 뒤로하고
주님을 전합니다.
오늘, 순종으로 나아갑니다.
붉은 마음 위로
노란 꽃을 얹었습니다.
마치 우리 앞에 놓인 문제들 같습니다.
어떤 건 위협처럼 커 보이고,
어떤 건 가볍게 웃음이 나기도 합니다.
우리 삶의 문제들이
주님의 손길에 닿아
노란 꽃으로 피어나면 좋겠습니다.
어둠 속에서도
작고 선명하게 빛나는
그런 아름다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묵상의 그림이 아닌,
전하고 싶은 마음 하나를 담았습니다.
붉은 마음 위로 얹은 노란 꽃처럼,
삶의 아픔 위에도
위로가 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