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37. 말씀, 내 발에 빛이 되어

가장 낮은 자리에 놓인 가장 높은 길

by HAN

아래의 그림은 전에 펜으로 그렸던 것입니다.

오늘 다시 보니, 문득 그 검은 선들이 길처럼 보였습니다.

무너진 것 위에, 뿌리를 내린 것처럼 자라나는 줄기, 고개 숙인 인물과 꽃이 함께 있는 풍경은 피어나고 싶지만 방향을 잃어버린 마음의 지도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은 없지만 빛을 향하고 있었고, 말은 없지만 기도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내 마음에 흐르는 그 빛과 기도의 근원을 묵상했습니다.


사순절, 이 길 위에서 다시 걷고자 하는 이들을 떠올립니다.
무너진 자리에서 피어나고자 하는 마음들 위로,
빛이 머물기를, 그리고 그 길을 열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시편 119:97–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 119:105)


시편 기자는 말씀을 사랑한다고 고백합니다.

그 사랑은 단지 지적인 사유나 경건의 태도가 아닙니다.

“종일 묵상한다”는 말속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과 지혜와 삶의 방향이 된 사람의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구약의 말씀은 ‘토라’, 곧 하나님의 가르침이며,

그 가르침은 하나님의 뜻이자 백성과의 언약이며,

하나님의 성품과 임재가 담긴 살아 있는 계시였습니다.


이 말씀이 신약에 이르러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 1:14) 하신 바로 그 사건,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 완전히 드러났습니다.

그분은 더 이상 두루마리에 적힌 율법이 아니라,

인간의 언어와 몸과 눈빛으로 오신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요 14:6).

시편 기자가 고백했던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는 선언은

이제 예수님 자신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내 발을 금하게 하시는 분이시고,

진리로 나를 지혜롭게 하시는 분이시며,

생명으로 나의 길을 비추시는 분이십니다.


이 길은 성공이나 성취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걷는 거룩한 여정입니다.

말씀이 이끄는 길은 세상의 방향과 다르며,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자주 멈추고 돌아보며,

다시 걸음을 떼는 법을 배웁니다.


말씀은 단순한 이정표가 아니라,

동행하시는 주님의 숨결이며

우리 삶을 붙드는 영원한 기준입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은 등불처럼 나의 오늘을 비추고,

빛처럼 나의 인생 전체를 이끌어 가십니다.

앞이 안 보이는 막막함은

감긴 눈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빛 된 주님 보게 하시고

그 안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게 하소서.


전하는 마음

눈을 감아도 느껴지는

빛이 있습니다.
미련이 남은 빛이 여전히
내 눈에 머물기 때문입니다.


외면하고 돌아서도 느껴지는
사랑이 있습니다.
안타까움 가득한 마음이
여전히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웃으며 바라볼 수 없음이,
감은 눈이 아픕니다.

눈 감고서라도 한걸음을 떼면 좋겠습니다.
빛 향해, 사랑 향해.


오늘의 그림

우연히 '생수의 우물'이라는 책 표지를 보았습니다.

파란색 꽃들이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파란 꽃들을 그렸습니다.

흰 바탕이 아니라 책 표지처럼 고운 빛을 내지 못합니다.

얇은 종이에 이미 색이 칠해져 있어서 덧칠을 하니 종이가 웁니다.

그래서 그 위에 얻어진 파란 꽃들은 아직 눈물을 머금고 있습니다.

눈물 머금은 파란 꽃들

이 그림은,
말씀을 따라 걷고자 하는 이들의 마음이
눈물 속에서도 피어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완전하지 않은 바탕,
울퉁불퉁하고 젖은 표면 위에서도
꽃은 조용히 피어올랐습니다.
그 자리는 상처 난 마음처럼 불안정했지만,
그 위에서도 생명은 머뭅니다.


등불처럼 하루를 비추고,
빛처럼 인생 전체를 감싸는 말씀의 능력은,
연약한 자리에서도 우리를 피워내십니다.

이 파란 꽃들은
우리의 눈물, 회복을 기다리는 마음,
그리고 말씀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하나의 기도처럼 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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