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향해 걸어가다
김동리의 소설 『사반의 십자가』가 생각납니다.
예수님을 신앙으로 고백하지 않는 인물들의 시선에서 십자가를 바라보지만,
그 속에서도 죽음을 넘어서는 ‘어떤 생명’에 대한 질문이 남습니다.
믿음으로 보지 않아도,
사반은 예수의 죽음을 응시했습니다.
그 시선은 신앙의 고백은 아니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질문합니다.
“나는 예수님의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
예수님이 잡히시던 밤,
마가복음에만 등장하는 한 청년이 있습니다.
베 홑이불 하나에 의지해 예수를 따라가지만,
그마저도 버리고 도망칩니다.
수치스럽고 실패한 모습의 그를
마가는 굳이 기록합니다.
우리 모두의 그림자를 닮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베 홑이불은 장례 수의, 잠옷, 혹은 보호받지 못하는 영혼의 상징일 수 있습니다.
그는 아무것도 지닐 수 없는 인간의 실존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마가복음 마지막에 나오는 “흰 옷 입은 청년”(16:5)을 떠올릴 때,
이 실패한 청년이 회복되어 증언자로 선 가능성도 엿보입니다.
이 청년이 마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다는 점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바라보는 사복음서의 시선이
서로 다름을 다시금 느끼게 합니다.
✦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
마태는 땅이 진동하고 무덤이 열리는 우주적 전환을 목격합니다.
마가는 철저한 고독의 절규와 침묵 속의 죽음을 기록합니다.
누가는 끝까지 흐르는 자비와 용서에 주목합니다.
요한은 십자가를 영광과 자기 헌신의 절정으로 묘사합니다.
✦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마태는 권능과 통치의 회복, 하나님의 나라의 선포를 강조합니다.
마가는 고요한 청년을 통해, 실패한 인간의 자리에서 시작되는 부활을 전합니다.
누가는 부활하신 예수께서 엠마오의 길 위에서 말씀을 풀어 주시는 장면을 통해,
기억과 공동체의 회복을 강조합니다.
요한은 마리아, 도마, 베드로와의 인격적 만남과 사랑의 회복을 통해
관계 속 부활의 완성을 전합니다.
왜 이렇게 다르게 기록되었을까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한 시선만으로 담을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복음서 기자들은
각자의 공동체 안에서,
각기 다른 고백과 해석의 자리에서
죽음 이후의 생명을 증언하고자 했습니다
(cf. 신 19:15; 롬 12:4–6; 고전 13:12; 갈 2:7).
그리고 어쩌면,
우리도 그렇게,
각기 다른 이해와 자리에서
예수님의 죽음을 바라보고,
신실함의 다양한 길 속에서
부활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다름으로 아파합니다.
그런데 오늘,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큰 사랑을 보았습니다.
한 시선만으로는 담을 수 없는,
너무도 깊고 넓은 사랑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서로 다른 시선인 이유도
그 사랑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제는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서로의 모습 속에서
주님의 사랑이 보이기를,
그 사랑을 서로에게
비추어 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죽음을 향해 걸어갑니다.
어둠 속에서,
생명이 숨죽이는 그 밤에.
눈에 띄지 않는 자국들,
풀잎 같은 희망을 품고
피처럼 떨어진 빛을 밟으며
조용히, 걸어갑니다.
죽음을 향한 걸음이
생명을 위한 빛이 되었습니다.
조금 있으면,
그 빛이 비치기 시작할 것입니다.
검은 십자가 안에
형체가 사라져 가는 인물 하나.
그러나 그 흔적엔 붉은 피,
초록의 생명,
그리고 미약한 빛이 남아 있습니다.
그분은 침묵 속에서도
생명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각자의 시선으로
그 길을 따라 걷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