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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라서 피어난 꽃

실패한 인생은 없다. 이어 붙이고,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순간이 있을 뿐

by HAN

그림 하나를 그렸다.

노란 꽃이 피어 있는 장면이었다.
마음 가는 대로 손을 움직였고, 색을 쌓았다.

그런데 완성된 그림을 보고 나니
어딘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형체가 너무 모호했고,
나조차도 이게 뭘 그린 건지 잘 몰랐다.


그래서 그 위에 다시 그리기로 했다.

이번엔 좀 더 정확하게.
꽃잎도 줄기도 또렷하게 보이도록.
마음뿐 아니라,

눈도 만족할 만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그렇게 다시 그렸고,
완성된 그림은 훨씬 정돈돼 보였다.
하지만 서툰 솜씨라

눈길을 끌던 빛마저 사라졌고,

사실적이지도 않았다.


처음엔 실패처럼 느껴졌던 장면들,
못생긴 조화처럼 마음이 안 닿았던 장면들.

그림을 잘랐다.
그리고 그 조각들을 다시 이어 붙였다.

처음부터 이어 붙이려고 자른 건 아니었다.
그저, 버리기엔 너무 아쉬웠고
조금이라도 살리고 싶었다.

그런데 한 조각 한 조각,
각자의 의미가 느껴졌다.
그래서 버리지 않고 이어 붙였다.

삐뚤어진 테두리,
흐트러진 모양이었지만—

그 안에 있던 감정이 다시 살아난 것 같았다.
그림이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


‘잘라서 붙인다’는 건
망가진 걸 억지로 살리는 게 아니라,
다시 피어나는 방식이었다.

모양은 달라도,
형태가 좀 망가져도,
꽃은 여전히 피고 있었다.

처음, 마음이 움직인 자리
형체는 흐릿했고, 감정은 막 시작된 상태였다.
뭔가 그리고 싶다는 마음만 있었고,
어떤 형상인지, 어디로 가는 건지 잘 몰랐다.
그저, 마음이 먼저 움직였던 자리였다.
조각난 채로 피다
그림을 잘라서 다시 붙인 모습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조각조각 나뉜 꽃들 사이에서
더 진짜 같은 숨결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형태는 흩어졌지만,
감정은 더 선명해졌다.


그리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삶도 그렇지 않을까.

한 삶은 없다.
그저 다시 이어 붙이고,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순간이 있을 뿐이다.


조각난 채로도 우리는
여전히 피어나고 있다.
그림을 통해 이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삶에서 조각을 이어 붙인다는 건,
결국 살아보겠다는 마음을 포기하지 않는 일이다.

흩어지고 찢어지고 망가진 순간들이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이 되도록—
남겨진 조각들을 한 조각씩 붙여가는 일.


완벽하진 않지만,
그 조각들 안엔 여전히 숨결이 있고,
이야기가 있고,
꽃이 있다.


삶도 그렇다.
어설프고 울퉁불퉁해도,
이어 붙인 자리마다 빛이 비친다.

그리고 때로는,
내가 아닌 누군가의 손길이
그 조각들을 조용히 이어주는 순간도 있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여전히 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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