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지나, 나만의 온도를 닮아가는 중
기억을 지키던 눈,
이제는 풍경을 바라본다.
빛 담은 예쁜 삶이고 싶었다.
처음에는 그랬다.
마음도, 말도, 그림도
다정한 무늬처럼 남고 싶었다.
그래서 예쁜 얼굴을 그리려고 했다.
그런데 그릴수록 얼굴은 날이 서고,
눈빛은 점점 정면을 겨눴다.
다정함은커녕 묵직하고 강한 침묵만이 가득했다.
다시 그렸다.
빛을 더했고,
선을 풀었고,
입술 사이에 조용한 틈을 남겼다.
그제야 눈빛이 조금 누그러졌다.
응시하던 얼굴이 풍경을 따라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다.
경계를 풀고 나를 꺼내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나도 몰랐던 나를 마주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예전에는 잊지 않기 위해,
다시는 당하지 않기 위해,
기억을 붙잡으려 애썼다.
그래서 그림 속 아이들은 눈을 부릅뜨고 있었고,
그 눈빛은 세상을 향한 경계이자,
나를 지키기 위한 방패였다.
그 눈은 단지 보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눈의 힘이 빠지고,
대신 빛이 스며들었다.
감정은 느슨해졌고,
얼굴은 온화해졌다.
기록하던 시선에서 이해하는 시선으로,
나는 조금씩 방향을 틀었다.
이해가 생기니, 상처는 가라앉았다.
나의 반응도, 타인의 행동도
결국은 또 다른 상처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었고,
비난보다는 너그러움이 먼저 찾아왔다.
예전엔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어른들의 말과 행동도,
이제는 "그럴 수 있었겠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나도 어느새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
살다 보니, 결국 같은 결론에 도달하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아무리 애써도 익숙한 지점에서 멈춰 선 나를 보게 된다.
때론 그것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멈춰 서는 순간을 지나치면,
우리는 앞선 이들의 오류를 되풀이하게 된다.
알고 멈추는 것과 모르고 반복하는 것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이제는 안다.
빛 담은 삶은 예쁘기만 한 얼굴을 그려서 완성되는 게 아니다.
상처를 마주하고, 이해하며,
그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나만의 방향으로 걸어가는 것.
그것이 내가 그리는 삶의 얼굴이다.
이번엔, 선함을 향한 - 나만의 선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