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아빠를 떠올립니다
비가 옵니다.
며칠 전, 이처럼 비가 내리던 날의 풍경이 떠오릅니다.
아파트 입구,
비를 맞은 자전거 두 대가 나란히 서 있었습니다.
크고 묵직한 어른 자전거 옆에
절반만큼 작은 전기자전거 하나.
단단했던 아빠의 모습과
병환으로 작아지셨던 모습 같았습니다.
지난 시간의 기억으로,
조금은 무거운 마음으로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 새벽, 비가 그쳤습니다.
맑게 개인 새벽녘 풍경이 아름답습니다.
동이 트기 직전의 햇살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빛을 품고 있습니다.
그 빛을 머금은 연둣빛 잎사귀들은
은총을 입은 듯 반짝입니다.
그 옆, 작은 돌을 바위 삼아 피어난
노란 섬씀바귀 한 송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순박한 모습에 마음이 멈춰 섰습니다.
예쁜 각도를 찾느라 핸드폰을 이리저리 움직이다 보니,
정작 그 순간의 떨림은 놓치고 말았습니다.
마음은 가득했지만, 사진은 담담하기만 합니다.
하얀 울타리 옆 장미는
꽃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 옆을 지나,
멀리 서 있는 나무로 이어진 길을 바라보다가
문득, 눈물이 났습니다.
그 길 끝에 아빠가 계신 듯합니다.
그 길을, 아빠와 함께 걷고 싶습니다.
아빠라면 분명
이 꽃은 무슨 꽃이고,
저 나무는 어떤 나무인지
하나하나 알려주셨을 겁니다.
이제야 귀 기울일 준비가 되었는데,
아빠는 이제 계시지 않습니다.
햇살을 머금은 나뭇잎 사이로
통신중계장치가 보입니다.
그리움에 잠겨 있던 나를 부릅니다.
이제 돌아가야 한다고.
아빠를 향한 마음을 그곳에 잠시 내려놓고,
나는 오늘로 돌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