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남아 있던 것들에 대하여

빠르게 소비되는 시대의 느린 질문

by HAN
존재하지 않는 권위를 믿은 나,
그리고 그 뒤에 조용히 남아 있던 질문들.
지금 우리는 무엇을 믿고, 무엇을 지나치고 있을까?


올해 초, '하버드 박사', 'UCLA 출신'의 심리학자가 썼고,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학자들의 추천사를 받아 유명했던 책이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한 사람의 의문 제기로,

결국 저자가 존재하지 않는 권위로 자신을 감쌌다는 것이 밝혀졌다.


책은 읽혔고, 팔렸으며, 많은 이들에게 위로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뒤늦게 알게 된 것은 책 속의 문장이 아니라,

책 바깥의 이야기였다.


"왜 그런 거짓말을 했을까?"라는 질문이 떠올랐을 때,

나는 한 개인에 대한 비난을 넘어

이 시대가 진실을 다루는 방식 자체에 의문을 품게 되었다.


어떻게 그런 거짓이 통할 수 있었을까?


'하버드', 'UCLA', '세계적 학자들의 추천사', '엄마들을 위한 공감 메시지'.

그녀는 우리 사회가 믿고 싶어 하는 틀을 정확히 짚어냈다.

우리는 그 포장을 믿었고, 그 포장은 소비에 최적화된 진실처럼 기능했다.


이 사례는 단 하나의 예일뿐이다.

때로는 ‘진실’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검증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인기와 포장의 힘으로 널리 퍼지기도 한다.


특히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콘텐츠일수록,

내용의 깊이나 정확성보다도 얼마나 잘 팔릴 수 있는가가 우선되곤 한다.
이런 구조 속에서 ‘진실’이라는 말은 자주 감정적 위로나 권위의 외피로만 사용된다.


우리는 지금 ‘생성의 시대’를 살고 있다.


AI가 그린 그림, 검색어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글,
실제 존재하지 않는 음색의 노래까지.
모든 콘텐츠는 “잘 소비될 수 있는가”를 먼저 묻고,
그다음에 만들어진다.


존재하기 때문에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소비되기 위해 존재하는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대.
그 속에서 우리는 매일같이,
무엇을 믿을지, 어디에 머물지를 스스로 선택한다.

베스트셀러 목록조차 더 이상 진실의 보증수표가 될 수 없게 됐다.


나는 묻는다.

“무엇이 가장 많이 소비될까?”에 맞춰 만들어진 것들 사이에서,
조용히 남아 있던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그림 뒤에 숨은 덜 다듬어진 손길,

잘 알려지지 않은 이름으로 올려진 고백,

속도보다 숨을 먼저 고른 문장,

'좋아요'보다 오래 기억되는 말들.


어쩌면 우리는 가장 덜 소란스럽고, 가장 덜 트렌디한 것 속에서
진실과 마주할 수 있는지 모른다.
그것이 어쩌면,
‘베스트셀러’라는 화려한 꼬리표 없이도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진정한 가치일지도 모른다.


이 빠르게 소비되는 시대에

진정으로 소모되지 않으려면,

때로는 느린 걸음을 걷고,

가끔은 멈춰 서서 질문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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