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응시하는 눈, 우리가 응시해야 할 세계
제목의 눈은 단지 하나의 시선이 아니다.
기술을 바라보는 우리의 의식이며,
동시에 기술로부터 우리를 지켜내려는
윤리의 응시일지도 모른다.
AI가 예술을 만들고, 사람들은 그것을 평가하며, 그 수익을 함께 나눈다.
이것은 먼 미래의 풍경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현실이다.
최근 내가 주목한 Botto라는 프로젝트는, 단지 AI가 만든 그림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았다.
그 속엔 기술과 권력, 예술과 윤리가 교차하고 있었고,
‘누가 응시하는가’, ‘누가 응시받아야 하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이 숨어 있었다.
Botto는 생성형 AI를 이용해 매주 수천 개의 이미지를 만든다.
이 가운데 자체 알고리즘이 약 350개의 후보를 추리고,
커뮤니티는 투표를 통해 가장 뛰어난 작품 하나를 선택한다.
선정된 작품은 NFT로 경매에 부쳐지고, 수익 일부는 공동 자금(Public Treasury)에 귀속된다.
이 과정에서 사용되는 $BOTTO 토큰은 투표와 일부 운영에 쓰이며,
탈중앙화를 지향하는 거버넌스 구조의 핵심이다.
겉으로 보기에 자율적이고 민주적인 예술 실험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엔 몇 가지 균열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 구조는 투기를 유도하지는 않을까?
권력은 정말로 분산되어 있는가?
우리는 이 알고리즘을 얼마나 이해하고, 통제하고 있는가?
$BOTTO 토큰은 거버넌스 참여의 열쇠다.
그러나 보유량에 따라 영향력이 달라지는 구조는
결국 소수의 손에 결정권이 집중될 위험을 품고 있다.
또한, 창작의 기준이 예술적 감동이 아니라
토큰 수익에 따라 왜곡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놀랍게도, Botto를 향한 비판적 시선은 이미 여러 층위에서 존재하고 있었다.
기술 분석가는 “작품이 점점 유사해지고 있다”며 알고리즘의 편향을 지적하고,
윤리학자는 “토큰 집중도가 높다면, 이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예술 비평가는 “어떤 미학이 강화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커뮤니티 구성원들은 “진입 장벽은 없는가”, “참여는 충분히 개방적인가”를 고민한다.
Botto는 하나의 작품이자, 하나의 실험실이며, 동시에 하나의 시험대다.
그 앞에선 우리는 단순한 감상자가 아니라, 응시자다.
Botto는 자율성과 투명성을 추구하며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작품 노출의 무작위성으로 인기 쏠림을 방지하고,
스테이킹 기반 구조로 단기 투기 세력을 견제하며,
커뮤니티 피드백을 AI 학습에 반영해 인간의 시선을 시스템에 녹여낸다.
그러나 알고리즘의 작동 원리와 판단 기준은 여전히 부분적으로만 공개되고 있다.
토큰 보유 불균형 역시 구조적 한계로 남는다.
‘완전한 자율’과 ‘완전한 공정’은 아직 도달하지 못한 지점이다.
우리는 매 순간 기술을 향해 시선을 보낸다.
그리고 어느 순간, 기술 또한 우리를 응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Botto라는 작은 생태계를 들여다보는 일은
결국, 우리가 AI 시대에 무엇을 지켜내야 하는지를 묻는 일이었다.
기술을 견제하는 것은 더 강한 기술이 아니다.
묻고, 들여다보고, 또다시 되묻는 인간의 감각이다.
그 응시와 질문의 반복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지켜야 할 윤리와 미래를 감지할 수 있다.
우리를 응시하는 눈,
우리가 응시해야 할 세계.
그 감각을 잃지 않으려는 마음.
그것이야말로,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보이지 않는 윤리적 보호막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