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무명>과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이 전하는, 이름 없는 헌신의 빛
오늘, 영화 <무명>을 보았다.
이 영화는 일제강점기 조선 땅에서 복음을 전하고자 헌신한 일본인 선교사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자신이 누릴 수 있었던 삶을 뒤로하고, 오직 신앙과 사랑의 뜻을 품고 조선 땅에 발을 디뎠다.
잠시 반짝이고 사라지는 불꽃이 아니라,
자신을 태워 오래도록 빛을 비추고자 했던 사람들.
영화의 제목 ‘무명(無名)’은 ‘이름 없음’을 뜻하지만,
영화가 끝난 뒤, 문득 ‘무명천’이 떠올랐다.
소박하고 담백한 직물, 오래 사용할수록 더 부드러워지고 태가 나는 천.
사랑도 그런 것 같다.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도록 곁에 머무는 것.
아픔을 보고도 외면하지 않고, 그 아픔 안으로 기꺼이 들어가는 것.
사랑은 그냥 지나칠 수도 있고, 눈감을 수도 있는데,
기어코 불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불 속에는
웃음과 따스한 온기, 그리고 오래 남는 여운이 있다.
그 여운은 또 다른 누군가를
불나방처럼 사랑을 향해 걸어가게 만든다.
영화 속 인상 깊었던 대사 하나.
우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본을 미워한다.
이토 히로부미의 일본을 미워한다.
그러나 이름 없는 당신의 일본은 사랑한다.
이름 없는 헌신.
그것은 조용하지만 가장 강한 사랑의 형태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나라의 상징이자, 교회의 상징이기도 하다.
우리는 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사람일까?
영화를 보며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 이 떠올랐다.
‘이름 없는 선교사’들과 ‘아무개 의병’으로 불렸던 수많은 보통 사람들.
그들은 거창한 영웅이 아니었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빛을 발했던 존재들이었다.
그래서 좋았다.
나는 반짝이지 않아도 오래도록 머무는
여린 빛이 더 소중한 사람이니까.
‘어떻게 살까’는 늘 고민하게 되는 숙제다.
<무명>과 <미스터 선샤인>은 그 숙제에 대한 하나의 답을 보여준다.
이름 없는 이들의 숭고한 헌신,
고통 속에서도 피어나는 사랑과 연대.
거창한 구원이나 설교가 아니라,
아픔 속으로 기꺼이 걸어 들어가 함께하고,
가진 것을 내어주고,
빈손으로 돌아서더라도
함께했던 마음의 온기만은 오래도록 기억하는 것.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은 그런 것일 테니까.
끝내 포기하지 않는 것,
기어이 다시 회고되는 것.
그것이 사랑이고,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여린 빛으로 살아가는 삶.
그 안에는 불 같은 사랑, 온기 어린 헌신, 그리고 신앙의 흔적들이 담겨 있습니다.
이 그림은 격렬한 듯 보이지만 부드럽게 흘러가는 선들처럼,
기억되지 않아도, 이름이 없어도, 끝내 이뤄내는 사랑의 방식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붉은 길은 고통을 통과하는 사랑의 걸음을,
초록과 파랑의 물결은 여전히 흐르고 있는 생명과 믿음을,
보랏빛 하트 안의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랑의 중심을 상징합니다.
이 그림이,
여린 빛처럼 누군가의 마음을
조금 덜 외롭게 밝혀주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