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 감각 그리고 전자약
지난 이야기에서 우리는 우리 몸의 견고한 건축물인 근골격계와,
그 구조물에 쉼 없이 에너지를 공급하는 세포 속 발전소 미토콘드리아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를 지탱하고 움직이게 하는 내부의 힘에 대한 탐구였습니다.
오늘은 그 시선을 우리 몸의 가장 바깥, 세상과 내가 만나는 첫 번째 경계면으로 옮겨가려 합니다.
바로 우리 몸 전체를 감싸는 가장 큰 기관인 피부와,
외부 세계의 다채로운 언어를 번역해 내는 섬세한 통역가들, 바로 감각기관입니다.
우리 몸의 자연스러운 소통 방식에 문제가 생겼을 때, 전자약(Bioelectronic Medicine)은 가장 정교한 방법으로 개입하여 그 흐름을 돕습니다.
전자약이란, 외부 세계의 정보를 우리 몸이 즉시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직접 '속삭여주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우리 몸이 세상을 인식하는 과정과, 전자약이 그 과정의 어느 지점에서 어떻게 '속삭이는지' 단계별로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경험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그것은 본질적으로 외부 세계의 다양한 에너지 형태를 우리 신경계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바꾸는 과정입니다.
이 언어는 주로 '전기 신호'이지만, 그 과정에는 정교한 '화학적 신호'가 함께 작용합니다.
우리의 감각기관들은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전기와 화학의 언어를 모두 사용하는 고도로 숙련된 통역가들입니다.
물리적 세계의 번역가(피부, 눈, 귀): 피부는 압력과 온도를, 눈은 빛을, 귀는 소리의 진동을 전기 신호로 바꾸어줍니다. 이들은 세상의 물리적 언어를 우리 몸의 전기 언어로 바꾸는 전문가들입니다.
화학적 세계의 탐험가(코와 혀): 후각과 미각은 조금 다릅니다. 코와 혀의 수용체들은 공기 중이나 음식 속의 특정 화학 분자와 결합하여 화학적 반응을 일으키고, 이 반응이 비로소 전기 신호로 전환됩니다. 이는 화학의 언어를 전기 신호로 번역하는 섬세한 과정입니다.
하나의 신경세포에서 다음 신경세포로 신호가 전달될 때는 '신경전달물질'이라는 화학적 메신저가 사용됩니다.
감각 기관에서 만들어진 전기 신호는 이제 정보 고속도로인 '신경계'를 타고 이동합니다.
신호는 말초신경계(PNS)를 통해 정보의 중간 집결지이자 반사 중추인 '척수'를 거쳐, 최종 목적지인 '뇌'(CNS)로 전달됩니다.
각 감각 기관이 보낸 파편적인 전기 신호들은 최종적으로 뇌에서 통합되고 해석됩니다.
뇌는 과거의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이 신호들을 조합하여
신호의 '번역', '전달', '해석' 과정 중 어느 하나라도 문제가 생기면
우리는 세상을 제대로 인식할 수 없습니다.
전자약은 바로 이 지점들에 개입하여 문제를 해결합니다.
역할 A: 감각 기능의 '대체' 1단계 '번역' 과정에 문제가 생긴다면, 즉 감각세포가 손상되었다면 전자약이 그 역할을 대신합니다. 인공와우는 소리를, 인공망막은 빛을 직접 전기 신호로 '번역'하여 뇌가 인식할 재료를 다시 공급해 줍니다.
역할 B: 신경 정보망의 '조절' 만약 2, 3단계의 '전달'과 '해석' 과정에서 신호가 왜곡되거나(파킨슨병) 과도하게 발생하면(만성 통증), 전자약이 의료적 필요에 따라 정보 고속도로에 개입합니다. 심부 뇌 자극술(DBS)이나 척수 자극기(SCS)는 신경 신호의 흐름 자체를 직접 '조절'하여 비정상적인 활동을 바로잡습니다.
이처럼 전자약은 감각의 입구에서 고장 난 번역기를 대체해 주거나, 정보가 오가는 길 한복판에서 신호의 흐름을 제어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 몸과 소통합니다. 이는 기술이 우리 몸의 언어를 이해하고, 가장 필요한 곳에 정확한 메시지를 '속삭여주는' 가장 진보한 형태의 상호작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전자약의 발전은 단순히 감각의 복원을 넘어, 일부 연구에서 감각의 확장 가능성도 제시되고 있습니다. (여러 차례 언급했던 것처럼, 우리는 전자약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경계에 서서 세상을 느끼다
피부는 '나'와 '나 아닌 것'을 구분하는 물리적 경계입니다.
이 경계가 있기에 우리는 독립된 개체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경계는 세상과의 단절이 아닌 소통을 위해 존재합니다.
우리는 피부를 통해 온기를 느끼고,
상처를 통해 아픔을 배우며,
타인과의 접촉을 통해 위로를 받습니다.
우리의 감각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세상을 '나의 이야기'로 재창조하는 창문과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타인의 마음에 공감하고,
보이지 않는 감정을 느끼는 것 또한,
이 감각의 원리가 확장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세상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피부라는 경계에 서서 온몸으로 세상을 느끼고 번역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저장된 사랑으로 따스함을 느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몸의 가장 바깥 경계에서 세상과 어떻게 소통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외부 세계의 가장 본질적인 요소인 '공기'를 받아들이고,
이를 생명의 에너지로 바꾸는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그리고 하루 동안 세상과 소통하며 쌓인 피로를 회복하고 내일을 준비하는 재충전의 시간은 우리 몸에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다음 여정에서는 생명의 가장 근본적인 리듬, 호흡기와 수면의 세계로 떠나보려 합니다.
우리가 들이마시는 한 번의 숨이 어떻게 생명을 유지하고,
깊은 잠이 어떻게 우리 몸과 마음을 회복시키는지,
그 놀라운 상호작용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