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를 부수고 말겠다고
다짐이라도 하듯
몰아치는 비바람
화를 내는 어른처럼
발목까지 고인
빗물을 흔들며
거친 소리를 내는 너
난 아무 일 없는 듯
공중에 떠서
외줄을 탄다
네가 없는 것처럼
어제 장맛비가 내렸다. 칠흑 같은 어두움에서 바람소리를 들으며 난 그 와중에 외줄 타기를 하는 상상을 했다.
천둥이 치고 바람에 외줄이 흔들려도 난 그저 외줄에서 발을 떼고 위로 뛰기만 하면 된다. 그냥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외줄은 나를 위해 있고, 위로 뛰고 내려오는 날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래서 네가 두렵지 않다. 이런 상상을.
'외줄 타기'하면 생각나는 것이 있다.
큰아이가 사춘기 때 반년쯤 방황을 한 적이 있다. 며칠씩 집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불안정한 생활이었고, 12시가 넘어도 들어오지 않는 아이를 기다리면서 난 뭔가 작은 소리만 나도 혹시 아이가 오나 하며 몇 번씩을 문을 열어봤었다. 밖으로 나가면 그 사이 아이가 들어와 있을 거 같아 멀리 나가지도 못하고 근처를 서성이기도 하면서. 탕자의 아버지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게 된 때였다.
그때 난 일을 하고 있었고, 무거운 마음으로 출근을 하면 이상하게 '아주 특별한 선물' 찬양이 떠올랐다. 속으로 하루 종일 그 찬양을 부르고 가사를 되뇌었다.
너의 이름을 내 손바닥에 새겨
쉼 없이 일할 때마다
난 널 기억하고 바라보고
널 위해 기도 한단다
네가 때로는 딴 곳을 바라보아도
난 끝없이 너만 바라본단다
언제나 어디에서나 난 너를 위해
넌 내가 이 세상에 보내준
아주 특별한 선물이란다
내 손으로 빚고 내 생각으로 만든
나를 아주 많이 닮은 또 하나의 나란다
그때 이 찬양과 함께 하나님의 보여주신 모습이 외줄을 타는 모습이었다.
내가 덤덤하게, 어쩌면 웃으면서 높은 곳에 있는 외줄을 타고 있었고, 양옆에서 누군가 손을 잡아주고 있었다. 난 그 시간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잘 보냈고, 방황을 끝낸 아이가 말했었다. 잠깐 다른 세계에 여행을 다녀온 거 같다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고, 도와주고 싶어 했던 아이. 어쩌면 아이는 그 세계를 미리 보고 온건지도 모른다.
어제 불현듯 외줄 타는 상상을 한건 그때의 영향 때문이었을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건 그냥 그곳에 서서 위를 향해 뛰는 거, 흔들림에 힘을 빼는 거. 그게 다라는 생각을 했다. 하나님이 주신 줄은 내편이다. 알아서 내가 내려오는 지점에 맞춰 있을 거다. 그게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을 믿고,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하루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