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기를 전하는 걸음
참 이상하다.
오랜만에 글을 쓰려니 왜 그동안 쓰지 않았는지부터 설명해야 할 것 같다.
누가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마도 그건 삶의 걸음을 기록하겠다던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마음의 찔림일 것이다.
그동안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다. 나는 글 대신 그림으로 삶의 걸음을 남겨두었다.
나에게 삶은 ‘사람을 앎’이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인간적인 연약함을 알아가는 것. 그래서 자신을 잘 알수록 타인에게 너그러워진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기다려주고 바라봐 줄 수 있는 마음, 그것이 지혜이고 힘일 것이다.
2026년을 맞으며 삶을 그림으로 그려보았다(제목의 그림).
왼쪽의 붉은빛은 ‘주의 보혈’, 오른쪽의 푸른빛은 ‘지식과 지혜’를 의미한다.
2026년, 은혜를 기억하며 사랑하는 삶. 그리고 지식과 지혜로 두려움 없이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꿈을 향해 내딛는 걸음,
들꽃에 둘러싸인 집,
흥겨움에 춤추는 아이,
사랑을 낚는 사람,
애쓴 손과 가시관,
가방 든 아줌마,
은혜의 소나기와 분홍 나무,
삿대질하는 할아버지,
노을 묻은 풍경…
일일이 열거할 수 없지만
그리고 거기에 또 하나 담겨 있는 것이 있다.
일부 그림의 검은빛은 물감이 아니라 먹물이다. 아빠가 남기신 먹물.
오른쪽 맨 아래 그림, ‘노을 묻은 풍경’은 처음으로 그림판을 사용해 그린 그림이다. 노을을 볼 수 있는 범위에 있다면 좋든 싫든 노을의 색을 머금게 된다.
그건 내게 신의 시선이고 사랑이다.
난 노을이 모두에게 닿길, 그 아름다움을 깨닫길 소망한다.
요양병원을 다니기 시작한 지 6개월이 되었다. 이제는 제법 적응하고 업무 이외의 것들도 보인다.
약국에 약을 가지러 오시는 분들은 대부분 제일 늦게 들어오신 분들이다. 처음의 모습은 누구나 서툴다. 그래서 그림을 가져다 놓기 시작했다.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처음 시작은 새 아가가 내게 선물한 몰리 해치의 "HAPPY DAY"였다. 기다리는 동안 스스로에게 꽃다발을 선물하시라고. 그 후엔 내 그림을 갖다 놓기 시작했고, 가끔은 이렇게 글도 적어놓는다.
꽃 그림으로 전하는 마음
예쁜 꽃이 아니지만 잘 보면 귀여운 구석이 있어.
오른쪽 꽃은 잎이 처진 볼 같아.
그래도 꽃이라 예뻐. 아마 대충 보면 그렇게 그려졌는지도 모를걸.
우리 모습도 그럴 거야. 너의 단점은 너에게만 크게 보여.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단점을 난 연약함이라고 불러.
그래서 우린 신이 필요하고 서로가 필요해.
그게 사랑을 향하는 문이 돼서 감사해.
우리 그렇게 감사하며 잘 살아내자. 이 땅의 삶을.
산 그림으로 전하는 마음
아름다움을 향하는 삶의 산을 그렸어.
울면서 가는 삶일지라도 더 큰 사랑을 향해 가기에 난 전보다 지금의 내가 더 좋아.
아는 만큼 보이과 아픔만큼 성숙하 진다는 건 불변의 진리 같아.
그런데 보고 깨닫게 하는 것도, 성숙을 향해 버티고 나아가게 하는 것도 신이 나 빛의 힘이라는 생각이 들어.
암튼 우리 삶의 성숙과 사랑을 향하는 것이기에 우리 모두는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말해주고 싶었어.
이런 나를 보며 누군가 그랬다. 정성이라고.
누군가에게는 거슬릴 수 있는 이 작은 몸짓이, 누군가에게는 사랑으로 닿길 바라는 마음이다.
지금껏 난 약사가 근무할 수 있는 다양한 곳에서 일을 해왔다. 그동안 요양병원은 약사가 마지막 선택하게 되는 직장으로 미뤄놨었다. 나이 탓인지, 시대 탓인지 난 이곳에 있다.
처음엔 생각을 못했는데 난 이곳에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난 우리 모두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곳 만큼 밀접한 곳도 없을 거 같다.
많은 약이 반납되는 경우는 갑작스러운 퇴원이나 사망이다. 예기치 않은 죽음이기도 하고, 예견된 죽음이기도 하다.
삶의 마지막이 가까워지면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그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일까.
이 질문 앞에서 내리는 결론은 항상 같다.
온기. 우리 모두에게는 온기가 필요하다.
우리 모두에게 있는 온기.
퇴사하는 직원분께 사탕 몇 개와 함께 짧은 글로 마음을 전했었다. 그분이 다시 전해준 사랑이다. 이곳에 그 사랑을 남겨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