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초등학교 때 전학을 세 번이나 다녀야 했다. 1학년 때 한 번, 5학년 때 한 번, 6학년 때 한 번.
그래서 나는 총 네 군데의 초등학교를 다녀야만 했다.
아버지의 건축 사업 때문에 지역을 옮겨 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정착한 곳은 양산이었는데, 그 시절 그쪽 건축 경기가 아주 좋았던 것 같다.
아버지는 해외 근로 이후 늘 건축, 설비 관련 일을 하셨는데, 양산으로 이사 간 후부터는 우리가 살 집을 짓고 들어가서 살다가 그 집을 팔고, 다시 새 집을 짓고, 또 우리 가족이 들어가 살다가 또 팔고, 또 다른 집을 짓고 또다시 팔고…
어른이 되어 생각해 보니 아마도 아버지가 초기 자본이 없다 보니 그러셨던 것 같다.
나의 초등 친구들 그룹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부산 친구들과 양산 친구들. 부산 친구들과는 6학년 봄 소풍이 마지막이었고, 양산 친구들은 6학년 가을 소풍을 첫 만남으로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의 같이 다녔다. 전학으로 가을 소풍 때 처음 만난 양산 친구들은 텃세가 좀 있었는데,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 괴롭히는 친구들이 있었다. 미묘하게 다른 부산말투와 단어들을 꼬투리 잡아 놀리기도 했으며 같이 어울려 주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중 몇몇은 등하굣길이 같아서이기도 했지만, 나를 감싸주기도 친구도 있었다. 그 친구들은 늙은 지금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강원도와 부산을 한 해에 몇 번을 오가며 서로를 지켜봐 주며 잘 살고 있다.
여러 번의 의도치 않은 전학 덕분에 나는 남다른 능력도 생겼다.
지금 나는 사람 사귀는 데는 타고난 것처럼 잘한다. 처음 보는데도 싱거운 말로 시작해서 호구조사까지 서로 묻는 관계로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처음 만난 사이지만 결국 집 초대까지 주고받는 관계도 쉽게 만드는 나다.
살아가는데 이보다 유용하고 더 좋은 능력이 있을까?
나는 오늘도 처음 본 손님과 고향을 이야기하며 야외테이블을 하나 팔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