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호날다
나는 미신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살면서 매순간 나만의 주술적 의미를 부여하고 살아왔던 것은 사실이다.
곤충을 기절할만큼 무서워하는 내가 돈벌레만큼은 잠시 대화를 할 정도로 대범해지고,
해마다 작업실 안에서 둥지를 트는 제비가 내년봄에는 박 씨를 물어 올 거라고 믿으며,
기분 좋은 일이 있었던 저녁, 액자 속에 있는 아버지가 가끔 입꼬리가 올라가 있는 것을 볼 때가 있고,
시험 치기 전에 머리를 감지 않는 건 당연하다 생각하고,
태극기를 그린 다음 날은 기분 좋은 전화가 올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가끔은 일부러 a4지에 태극기를 그리는 나다.
이 정도면 누구는 미신을 맹신하는 수준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미신을 믿지 않는다고 말한다.
서른 중반쯤 어느 겨울, 동네 형님의 성화에 강원도에서 제일 용하다는 점집을 간 적이 있다.
고민을 이야기하고 점쟁이가 시키는 대로 하면 진짜 이루어진단다.
궁금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그리고 그땐 일이 많지 않아서 시간이 좀 많기도 해서 못 이기는 척 따라갔었다.
1시간을 넘게 달려간 곳.
예상과는 달리 여느 점집처럼 기다란 대나무나 각양각색 널려있는 천도 없었다.
그저 평범했고 절복바지를 입은 아주머니가 분주하게 다니기는 했으나 그저 마당 넓은 평범한 가정집이었다.
그 아주머니는 대문을 들어서는 우리를 보더니 다짜고짜 "잠깐 기다리세요~~" 하고는 현관 안으로 들어가고서 이내 손짓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형님과 나는 뒤따라 짧고 좁은 복도를 지나 안방으로 들어갔더니 흰머리 흰옷 할머니가 반기며 말을 걸었다.
"애기아빠 뭐 하러 왔어요?"
'헐~ 내가 애기 아빤지 어떻게 알았지??' 첫 빵부터 너무 신기하고 놀래서 말을 더듬었다
"아.. 아...저.... 자.. 자유롭게 날고 싶어서..."
흰머리 할머니는 짧은 내 말을 다 듣지도 않고, 더 이상 궁금하지도 않은 듯 "흠..." 하고는
"밖에 나가서 이름 석자와 주소, 그리고 5만 원을 주고 가면 반지를 하나 집으로 보내줄 건데 자주 빼지 말고 꼭 끼고 다녀요." 그러면 날 수 있다고.
그렇게 할머니와 직접적인 대화는 30초.
마을 형님 보는 눈도 있고 해서 시키는 대로 일단 5만 원과 주소, 이름을 적어주고 나왔는데
점집에서 집까지 오는 동안 속으로 너무 어이가 없다는 생각을 집에 도착할 때까지 했었다.
살면서 점집은 처음이었지만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는 점쟁이의 모두가 알고 있던 그 모습으로 나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너무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점집을 갔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채 우체국에서 택배 문자 하나를 받았다. 세상에서 제일 반가운 문자가 택배 문자이기에 누가 무엇을 보냈을까 하는 마음에 직접 수령하러 갔었다.
생각지도 않은 점집에서 온 반지였다. 그때 그 사건은 기가 찼어도 궁금했기에 열어봤더니 은반지였다. 진짜 은일까 하는 생각에 빙그르 둘러보는데 '종호날다'라고 각인이 되어있는 게 아닌가. 아.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를 무어라고 표현해야 될까 하는 생각이 밀려왔다.
'5만 원 주고 받은 은반지라... 결국 5만 원짜리 반지라는 말인데... 보통 은반지가 5만 원 정도 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 '손해본건 아니네..' 하는 위안과 '뭐... 양심적인 점쟁이네~' 속으로 생각하며 차에 올라타서 반지를 왼쪽 약지에 끼워 봤다. 꼭 맞지 않았지만 빠지진 않을 듯한 크기로, 각인된 이름 때문인지 늘 끼던 반지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심지어 장신구를 하지 않던 나에게 은반지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처음 했었다.
반지 때문이었을까??
사실... 그 반지를 낀 후 나에게 많은 일이 생겼다.
한가했던 겨울을 지나 그해 봄, 나는 날아다녔다.
주문이 물 밀듯 들어왔고 수업요청이 하루에도 몇 건씩 들어오면서 우리 부부가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일을 해야만 했었다. 그야말로 내 몸은 날아다녔다.
그 점쟁이의 주술이었을까?? 그 반지의 마법이었을까??
이듬해, 더 넓은 곳으로 작업실을 이전하면서 홍천에서 제일 규모 있는 나무작업실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심지어 학교대상으로 수업을 많이 했다고 교육부장관에게 상도 받았다.
살면서 나에게 이런 영광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지금도 나의 왼쪽 약지에는 그 반지가 끼어있고 나는 날아다닌다.
가끔 햇볕에 검게 그을린 손에서 반지를 뺄 때가 있는데 하얗게 남은 은색 자국이
얼마나 많이 날아다녔는지를 말해주는 것 같다.
오늘도 이른 아침부터 날 준비를 하고 있다.
조금만 더 날다가 기회를 만들어 그 점집을 다시 가게 된다면
이젠 걷고 싶다고 말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