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초록날다

벼랑 끝에서 움켜쥔 삶

초록선물

by 종호날다

나는 참 많은 빚을 지고 산다.

절반은 사람에게, 나머지 절반은 돈에게 진 빚이다.

한때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절망과 손에 잡히는 것 하나 없는 공허함 속에서 극단적인 생각마저 품었었다. 차마 스스로 생을 마감할 용기는 없어, 차라리 몸이 부서져 죽음에 이르도록 스스로를 혹사시키기도 했다. 그것이 우울증이었는지 단정할 순 없지만, 텅 빈 집에서 홀로 매일 밤 눈물짓던 날들이 있었다. 너무도 죽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너무도 살고 싶은 처절한 안타까움이 뒤엉켜, 터질 듯한 가슴을 부여잡고 술로 지새우며 생각에만 잠겨 허우적거렸다.


어린 두 아이, 성학이와 소연이를 볼 때면 가슴 안쪽 깊은 곳이 무언가에 짓눌린 듯 더욱 아려왔다. '조금만 더... 아이들이 조금만 더 크는 것만 보고 떠나리라.' 그런 위태로운 다짐으로 연명해 온 시간이 벌써 이만큼 흘렀다. 어쩌면 이 절박한 인연의 끈을 놓는 날, 나의 생도 끝날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살고 싶다. 독하게, 죽을 만큼 간절히 살고 싶다. 돈과 사람에게 구속된다는 것은 참으로 힘겨운 일이다. 내가 누군가를 구속할 때는 미처 몰랐던 그 무게가, 온전히 나를 짓누를 때의 고통은 참고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죽지 않고 이 모든 과정에서 도망치듯 벗어날 수만 있다면, 내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 손을 잡고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었다.


이제 나 혼자는 살 수 없다. 내 삶에 아내가 없다면, 단 하루도 견디지 못할 것이다. 매일같이 사소한 말다툼으로 싸우기도 하지만, 그녀와 떨어져 산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밤에 아이들이 없으면 편히 눈을 붙이지 못하는 나는 그런 가장이다. 요즘 나의 벌이가 시원치 않아 모든 생계는 아내의 회사 월급에 의지하고 있다. 슬프고, 있어서는 안 될 일이지만, 빚에 쪼들리는 현실 앞에서 나는 무력했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초조감은 굴뚝같았지만, 막막한 현실 앞에서 뚜렷한 해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희미하게나마 그 개념이 잡히기 시작한다.

행복하게 사는 법을 하나씩 메모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귀농을 절실히 꿈꾸었다. 엄밀히 말해, 아름다운 전원주택에서의 한가로운 전원생활이 아니다. 내 꿈은 농사를 지어 자급자족하고, 거기에 안정적인 추가 소득원을 찾아 아이들을 가르치며, 아내와 함께 열심히 저축하여 더 넓은 농지를 일구고 평생 가꿔갈 집을 짓는 것이다. 그리하여 훗날 우리 아이들이 자라 시집, 장가를 가더라도 언제든 편히 찾아올 수 있는 정겨운 친정을 만들고 싶었다.


돈이 많고 도시에 커다란 집이 있어야만 남들에게 인정받는 삶일까? 나는 결코 그리 생각지 않는다. 나는 나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안다. 요란하고 복잡한 도시보다는 조용하고 차분한 시골이 내게 맞다. 성격이 느릿느릿해서가 아니라, 어떤 일이든 한번 시작하면 깊이 파고들어 집중하고, 도전하며,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추진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자화자찬이 아닌, 내가 경험으로 체득한 나의 모습이다.


주변에서 귀농에 실패한 이들을 몇몇 보았다. 그들은 귀농의 취지는 좋았으나, 뚜렷한 계획이 없었고 문제가 생기면 안일하게 돈으로 해결하려 했다.

그저 막연히 한적한 시골 풍경에 끌려 찾아간 이들이었다. 귀농은 단순히 농촌으로 돌아가는 행위를 넘어선다. 그 이면에는 수많은 오해와 숨겨진 진실, 막막한 두려움과 그럼에도 터져 나오는 깊은 그리움, 주변의 반대와 또 다른 한 편의 격려, 현실적 생존의 문제와 실존적 가치관의 충돌 등등… 이 모든 것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오히려 튼튼한 징검다리로 만들어야 할 숙제들이 산적해 있다. 도시에서 귀농을 준비하는 단계부터 실제 귀농 생활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목록들을 헤아려본다.


귀농이라는 아름다운 꿈이자 냉정한 현실을 온전히 나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길고 긴 여정을 위한 설계도인 셈이다. 나는 그 설계도를 조금씩 메모해 나갔다. 시골로 가서 백 평의 밭을 갈든 만 평의 농사를 짓든, 나는 무언가를 심고 거두게 될 것이다. 도시생활 내내 흙 한번 제대로 만져보지 못하다가, 귀농하자마자 거창하게 농사를 짓겠다는 생각은 오산임을 안다. 재를 묻혀 심는 씨감자부터 배추, 옥수수, 상추, 고추, 깨, 무, 파 같은 작물들은 비교적 재배가 수월하기에 처음에 작은 규모로 시도해 볼 수 있는 일들이다. 이는 자급자족에 필요한 최소한의 준비라고 생각한다. 다른 것은 몰라도 농사만큼은 혼자 힘으로 되는 일이 없다고들 한다. 특히 시설 농사 같은 경우는 전문 지식과 경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단다. 농사는 하늘이 짓는 것이고, 이웃의 도움 없이는 시작조차 어렵다는 말을 깊이 새긴다. 하늘이든 이웃이든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는 농사도 귀농도 힘든 일이기에 마을 사람들과 진심으로 어울리며 친분을 쌓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농협이나 영농조합에는 농사 정보가 넘쳐나고, 웬만한 정보는 인터넷에서도 얻을 수 있으니 아주 불가능한 도전은 아니라고 믿는다.


계절 농사나 생활 필수 농사를 지으며 남는 것은 도시의 친구들이나 친척들에게 팔아볼 생각이다. 큰돈은 아니겠지만, 시골에서는 요긴한 추가 수입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농산물 판매로 경제적 여유를 찾겠다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남아서 버려지기 쉬운 수확물을 필요한 이들과 나누고 작은 보탬도 얻자는 소박한 생각이다. 결론적으로, 귀농을 해서 도시생활과 같은 경제적 수준을 유지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내 계획대로라면 우리 가족이 살 수 있는 소박한 집과 천 평 남짓의 빌린 텃밭이면 충분하다. 그 이상이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대규모 시설 농사나 축산업을 할 것이 아니라면 족하다고 생각한다. 도시에서의 삶을 그대로 시골로 옮겨놓는 방식의 귀농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금전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인 '전원주택에서의 전원생활'일뿐, 내가 꿈꾸는 '귀농'과는 거리가 멀다.

나는 농업으로 큰돈을 벌 생각은 전혀 없다. 간혹 매스컴에서 농업을 통해 성공한 사례들을 접하지만, 그것이 나의 목표는 아니다. 물론 좋은 아이템이 있다면 적절히 활용하겠지만, 전적으로 의존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의 실질적인 경제 소득원은 나무다. 지금도 인터넷과 오프라인을 통해 좌탁이나 벤치, 스툴 같은 간단한 소품용 가구를 만들어 팔고 있는데, 이를 더욱 체계화하여 생산하고 판매할 계획이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생활 소득원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시골은 도시 생활비의 절반 이하로도 생활이 가능하다고 한다. 자급자족으로 식비를 줄이고, 아이들 학비 또한 도시와 달리 지원을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구 생산은 지역 조직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이미 잘 형성된 곳도 많고, 앞으로의 전망도 밝다고 들었다. 그 외에도 관공서나 농협에서 운영하는 장터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내가 마음속에 품은 귀농지는 강원도다. 며칠 전, 아내와 함께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과 그 주변 여러 곳을 둘러보고 왔다. 1박 2일의 짧은 여정이었지만, 지인의 도움으로 비교적 많은 곳을 살펴보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대부분 마음 따뜻한 분들이었고, 귀농해서 1년, 2년, 혹은 7년 차에 접어든 이들도 있었다. 모두 자신만의 방식으로 성공적으로 정착한 경우였다. 귀농 선배가 있는 지역이라면 정착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아파본 사람이 아픈 마음을 아는 법이니까. 서로 의지하고 배울 점도 많을 것이다. 물론 그들이 나를 도와줄 의무는 없지만, 용케 좋은 인연을 만나 함께 마을을 돌아보고 저녁 술잔을 기울이며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그분들과는 앞으로도 좋은 인연을 이어갈 수 있을 것 같고, 많은 도움을 주시겠다는 약속도 받았다. 농사 이야기, 사람 사는 이야기만큼 사시사철 풍성하고 무궁무진한 대화 주제가 또 어디 있겠는가. 한 귀농 선배는 3년 전 사업 부진으로 서울 생활을 접고 큰돈 없이 강원도로 들어와, 헌 집에서 혼자 약 3개월 동안 지내며 자리를 닦은 후 가족과 함께 본격적인 귀농 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도시에서 하던 목공 일을 계속하며 하나씩 기반을 다졌고, 틈틈이 농사도 지으며 아이들 학비도 마련하는 등 큰 어려움 없이 지금은 잘 살고 있다고 했다.

귀농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던 나에게 그는 "아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어려울 것이 하나도 없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아무런 연고 없이 생활하다 3년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주위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는 그의 경험담은 많은 것을 시사했다. 당장에 땅이 없어도 생활할 수 있는 곳이 강원도이며, 농사지을 땅은 그야말로 천지에 널렸다고 한다. 물론 주인 있는 땅이지만, 1년에 10만 원도 안 되는 돈으로 얼마든지 빌려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3년간 꾸준히 지역에서 농사를 지으며 신뢰를 쌓았고, 덕분에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농지 2000평가량을 매입할 수 있었다고 한다. 3년 이상 지역에 거주한 자격으로 농가주택(30평) 건축 허가도 받아, 지금은 직접 집을 짓고 있으며 바닥 기초공사가 마무리 단계라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목공 작업실 또한 간이 건물이지만 제법 멋들어지게 지어놓았다.

그는 나에게 우선 땅은 빌려서 농사를 짓고, 살 집은 수리가 필요한 촌집을 권했다. 마을에서 한 해 농사를 지으며 배우고, 지역 정보를 충분히 접한 후에 좋은 땅을 매입하는 것이 귀농의 순서이자 실패하지 않는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무턱대고 비싼 값에 땅부터 덜컥 사서 귀농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라고 단언했다. 귀농의 성공 비결은 그 마을에 진심으로 정을 붙이고, 헛된 욕심을 버리는 것이라고, 성공한 그들은 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나는 귀농 성공을 위한 구체적인 걸음을 내딛고자 한다. 초기 정착비를 최소화하고, 귀농 후 수개월간 수입이 없을 수도 있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무엇보다 가족과 함께 가야 마을에서 소외되지 않고, 가족이 함께 힘을 모아야만 낯선 환경에서도 꿋꿋이 잘 살아갈 수 있다. 귀농에 잘 적응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영업이나 판매직에 종사했던 경험이 있는 이들이라고 한다. 원주민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고, 마주칠 때마다 먼저 허리 숙여 크게 인사하는 것은 좋은 관계를 맺는 데 유리할 것이다. 그리고 마을에서 신망받는 어르신과 가까이 지내며 삶의 지혜를 배우는 것도 중요하리라.

벼랑 끝에서 마지막으로 움켜쥔 삶의 동아줄, 그것은 나에게 강원도에서의 귀농이다. 이 절박함과 간절함으로 빚어진 꿈을, 나는 이제 냉철한 계획과 뜨거운 실천으로 현실로 만들어갈 것이다. 그곳에서 나와 아내,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돈과 시간에 쫓기지 않고,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자연의 순환 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일구어갈 것이다. 어제의 눈물을 딛고, 오늘의 희망을 심으며, 내일의 풍요로운 삶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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