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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윤지 Jun 01. 2023

기존 질서에 저항한다는 것

동시대 아티스트 #한국편 ② 하종현

2022년 개최된 베니스 비엔날레는 팬데믹 이후 3년 만에 재개되어 그 의미가 컸다. 하종현 화백은 이곳에서 국제 미술전 병행 전시로 회고전을 개최할 만큼 그 저력을 세계에 보여주었다. 그의 작품 세계를 대변하는 '접합' 시리즈는 어떤 물질과 행위가 맞닿아 탄생하는 걸까? 세 가지 관점으로 '접합'을 읽어본다. 



① 캔버스엔 한 면만 있지 않다

   

하종현, 'Conjunction 19-14'(2019) 중 일부, Oil on hemp cloth, 146x112cm, ⓒAlmine Rech

접합(Conjunction, 接合)은 사전적으로 '한데 대어 붙임. 또는 한데 닿아 붙음'을 뜻한다. 마대와 물감, 작가의 행위와 도구, 회화와 물성. 서로 다른 물질이 만나면 충돌하다가도 자연스레 어우러지면서 새로운 에너지가 발생한다. 나홀로 있다가도 전혀 다른 사람을 만나 대화를 주고 받으면 달라진 주변 공기를 느낄 수 있는 것처럼. 하종현이 그리는 '접합'은 납작한 평면 회화가 아닌 것이다. 시각을 넘어 촉각이 동원될 만큼 물리적 성질이 두드러진다.

(좌) 하종현, '작품 73-15A'(1973), 철조망, 마대, 패널, 115x115cm, ⓒ부산시립미술관

(우) 하종현 '작품 73-13'(1973), 철조망, 마대, 패널, 120x240cm,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소장, ⓒGuggenheim


작가가 재료를 입체적으로 대하는 태도는 철사·마대·용수철·못 등 뾰족한 사물에 주목했던 초기작에서부터 발견할 수 있다. 마대 캔버스를 철사로 포장하듯 격자무늬를 만들었다. 철사는 캔버스 앞뒷면을 관통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사이에 있을 미세하게 들뜬 공간도 지나간다. 게다가 부드러운 바탕과 날카로운 철사는 극단적일 만큼 다른 특성을 지녔다. 강렬한 대비로 물질의 속성을 부각하는 것이다.

하종현, '무제 72-C'(1972), 철조망, 마대, 패널, 122x244cm,  ⓒ부산시립미술관

작가는 기존 관습적인 회화와 달리 캔버스 겉면만을 사용하지 않았다. 캔버스까지도 평면이 아닌 입체로 인식했기에 가능한 작업이었다. 그렇게 작업 방향은 오브제 일부가 아닌 '전체'와 속성, 물질이 존재하는 공간에 대한 탐구로 향하며 '접합' 연작으로 이어진다.



② 일체화된 마대와 색채


하종현, 'Conjunction 79-79'(1979), Oil on hemp canvas, 80x159cm, ⓒTina Kim Gallery
하종현, 'Conjunction 09-001'(2009), Oil on hemp cloth, 194x260cm, ⓒArtsy

하종현은 '접합'으로 마대와 물감이 지닌 '물성'에 주목하는 일관성을 보이면서도 색채는 다양하게 활용한다. 그가 물감을 선택할 때 가장 우선에 두었던 기준은 '마대와 물감이 얼마나 시각적으로 조화를 이루는가'이다. 1970년대에 작업한 초기 '접합'에서 흙색에 가까운 마대와 흰색 물감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후 그는 암녹색, 암청색, 짙은 갈색, 황토색 등 마대와 유사한 색을 먼저 사용하였다.


토담의 빛깔, 흙의 빛깔을 연상시키는 제 작업의 색채도 그러한 의미를 전제하기 이전에 마대와 거부감을 보이지 않는 물질로서 선택되어진 것이지요. - 하종현, 2001년 인터뷰 中

(좌) 하종현, 'Conjunction 17-58'(2017), Oil on hemp cloth, 162x130cm, ⓒAlmine Rech

(우) 하종현, 'Conjunction 18-22'(2018), Oil on hemp cloth, 180x180cm, ⓒAlmine Rech


최근 '접합' 연작에 나타난 색은 초기 작업과는 달리 단청, 전통 악기 등에서 영감받은 붉은색, 다홍색, 푸른색 등으로 다채롭다. 이또한 물감과 바탕이 조화로울 수 있도록 마대 캔버스 전체가 해당 빛깔로 덮여있다. 마대와 물감이 일체화될 정도로 조화를 추구한 이유는 인위성을 배제한 '자연스러움'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③ 두터운 물감 위에 쌓는 신체 행위

 

뒷면에서 밀어넣은 물감이 마대 틈 사이로 나타난 모습. ⓒconjunction1935.com

성긴 마대 뒷면에 물감을 밀어 넣으면 앞면에 표출된 물감은 다양한 형태를 띱니다. 흘러내리고 뚝뚝 떨어지거나 마포에 흡수되어 물감의 색, 결, 밀도 등이 달라집니다. 특히 단색은 마대를 거치면 더이상 한 가지 색으로 남아있지 않죠. 흰색은 더이상 모두 같은 흰색이 아니게 됩니다. 

마대 앞면에 표출된 물감에 작가의 행위를 개입시킨다. ⓒThe Korea Times

우연히 나타난 색과 무늬 위에 작가는 칼, 붓, 나무 주걱 등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구를 활용해 행위를 개입시킨다. 쓸고, 밀어내고, 긁어내는 등 '신체 행위'를 하는 목적은 물성이 지닌 '원초성'에 동화되고자 하는데 있다. 두터운 물감 위에 쌓인 행위의 흔적은 의도적으로 물성을 변형하고 인공적인 표현을 만든다기 보다는 물리적 재료에 작가가 행위로 흔적을 남기며 물감의 물성과 질감이 지닌 생생함을 강조한다. 이로써 '마대·물감·신체'라는 3요소가 균형을 이루며 접합한다.

마대 뒷면에서 물감을 밀어넣는 모습. ⓒconjunction1935.com


내가 추구하는 변화는 나이를 먹었다고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다. - 하종현


반세기를 넘게 탐구한 '접합'은 지금도 집요하게 이어진다.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작가가 보여주는 치열함과 새로움을 찾는 도전 정신은 우리 안 뜨거운 무언가에 불을 지핀다.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과 함께 프랑스 3대 미술관으로 꼽히는 파리 퐁피두 센터를 비롯해 뉴욕 현대 미술관(MoMA),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국립 현대 미술관까지. 곳곳의 미술 기관에서 하종현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표지 : 하종현, 'Post-Conjunction 21-201'(2021), ⓒTina Kim Gallery 



 원윤지



※ 누적 회원 13만 명을 보유한 아트테크 플랫폼 T사 앱 매거진과 블로그에 연재했던 글입니다. 게재본과 일부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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