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에 대한 단상
살다 보면 모든 것을 잃은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사랑도, 자존심도, 어쩌면 꿈마저도 함께 흔들리는 시간. 그때 사람은 무엇을 붙잡게 될까. 어떤 사람은 분노를 붙잡고, 어떤 사람은 사라져가는 애착의 잔해를 붙잡으며 위태롭게 버틴다. 1890년 피에트로 마스카니(Pietro Mascagni, 1863~1945)가 발표한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Cavalleria Rusticana」는 시칠리아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부활절 아침, 평화로운 마을에서 이미 비극은 조용히 시작되고 있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산투차라는 여인이 있다. 그녀는 사랑했던 남자 투리두에게 버림받는다. 투리두가 옛 연인 롤라에게 돌아가자 산투차는 마을에서 명예를 잃은 채 혼자 남겨진다. 절망과 질투 그리고 아직 남아 있는 사랑 사이에서 그녀의 마음은 뒤엉킨다. 결국 그녀는 감정에 휩쓸려 롤라의 남편 알피오에게 두 사람의 관계를 알리고, 그 순간부터 이야기는 되돌릴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결투가 벌어지고, 마지막에는 투리두의 죽음이라는 비극적 결말에 이른다. 겉으로 보면 이 오페라는 한 남자의 죽음으로 끝나는 이야기다. 그러나 조금 더 들여다보면 사실 이 작품이 그리고 있는 것은 한 여인의 절망에 더 가깝다. 사랑을 잃은 순간 삶 전체가 무너지는 것처럼 느끼는 마음. 그것이 바로 산투차의 비극이다.
오래전 나 역시 관계 하나에 온 마음을 빼앗겼던 시절이 있었다. 그것이 흔들리자 세상 전체가 함께 흔들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람은 때때로 누군가를 잃는 것보다 더 두려운 순간을 마주한다. 바로 자기 자신이 흔들리는 순간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집착하고, 붙잡고, 때로는 스스로를 잃어버리기도 한다. 산투차를 바라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그녀는 정말 사랑 때문에 무너진 것일까. 아니면 이미 흔들리고 있던 마음이 사랑에 기대고 있었던 것일까. 삶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조용히 한 가지 사실을 가르쳐 준다. 어떤 절망적인 순간에도 우리가 가장 먼저 지켜야 할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누군가를 붙잡기 전에 먼저 자기 마음을 붙잡아야 한다는 것을. 만약 산투차가 그 사실을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이 작품의 이야기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는 이 오페라를 오래 기억하는지도 모른다. 인간이 얼마나 쉽게 감정에 휩쓸리고, 또 얼마나 늦게 스스로를 이해하게 되는 존재인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 어리석고도 뜨거운 감정의 소용돌이는 결국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Cavalleria Rusticana
구성 단막(약 70~80분)
대본 귀도 메나시 Guido Menasci
초연 1890년 5월 17일, 로마 코스탄치 극장
배경 시칠리아의 한 마을 광장
등장인물
산투차 Santuzza - 시골 처녀 / 소프라노
투리두 Turiddu -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젊은 마을 청년 / 테너
루치아 Lucia - 투리두의 어머니 / 콘트랄토
알피오 Alfio - 마을의 마부 / 바리톤
롤라 Lola - 알피오의 아내 / 메조소프라노
줄거리
막이 오르기 전, 투리두가 옛 연인이자 현재 마부 알피오의 아내인 롤라를 찬미하는 노래 '시칠리아나(Siciliana)'가 연주되며 비극의 전조를 알린다.
부활절 아침, 시칠리아의 한 마을 광장. 투리두에게 버림받은 산투차가 마마 루치아의 주점을 찾아와 투리두의 행방을 묻는다. 루치아는 아들이 포도주를 사러 외지에 나갔다고 말하지만, 산투차는 투리두가 밤사이 마을에 머물렀다는 목격담을 근거로 이를 부정한다. 이때 등장한 마부 알피오가 자신의 아내 롤라를 자랑하며, 정작 자신도 아침에 투리두를 보았다고 언급하여 긴장을 고조시킨다.
부활절 미사가 시작되고 광장에 홀로 남은 산투차는 루치아에게 자신의 비극적 처지를 고백한다. 군 복무 시절 연인이었던 롤라가 알피오와 결혼하자 투리두는 복수심에 산투차를 유혹했으나 결국 다시 롤라에게 돌아가 산투차를 버리고 말았다. 산투차는 투리두에게 매달리며 관계 회복을 호소하지만, 투리두는 냉정하게 그녀를 밀치고 롤라를 따라 교회로 들어간다. 극도의 배신감을 느낀 산투차는 뒤늦게 나타난 알피오에게 롤라와 투리두의 불륜 사실을 폭로한다. 분노한 알피오는 피의 복수를 맹세한다.
미사가 끝난 뒤 투리두는 마을 사람들과 축배의 노래 '브린디시(Brindisi)'를 부르며 분위기를 띄운다. 그러나 알피오가 나타나자 분위기가 얼어붙는다. 투리두가 술을 권하지만 알피오는 그것이 자신에게는 독이 될 것이라며 거절하고, 두 사람 사이에는 피할 수 없는 결투가 벌어진다. 죽음을 예감한 투리두는 어머니 루치아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며, 자신이 돌아오지 못할 경우 홀로 남겨질 산투차를 돌봐줄 것을 부탁한 뒤 결투장으로 향한다. 잠시 후 정적을 깨는 여인의 비명과 함께 투리두의 죽음이 선포되며 막이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