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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점점 나아지고 있어

불량공주 모모코OST - She Said

by 이윤주


<불량공주 모모코>는 학창 시절 한참 일본 문화에 빠져 일본어 공부를 하고 있었을 때 보게 된 영화다.

이 영화를 처음 본 지 십수 년이 흘렀지만 영화 속 주인공의 의상은 아직도 선명히 기억에 남아 있다.

로코코 시대를 동경하며 온몸을 프릴로 감싼 로리타 드레스를 입고, 우아하고 사치스러우며 달콤한 인생을 꿈꾸는 열일곱 살 소녀 모모코. 원하는 드레스를 사기 위해 아빠에게 온갖 거짓말로 돈을 뜯어내지만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것도, 자신이 어딘가 비뚤어져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모모코는 그런 알량한 도덕성보다 자신의 행복이 가장 중요한 아이였다. 아빠의 사업이 망해 할머니가 있는 시골로 내려온 모모코는 물건을 팔기 위해 잡지에 글을 올렸다가 이치고를 만나게 된다. '인생은 혼자 살다 혼자 죽는 것'이라고 믿고, 친구가 없어도 괜찮다고 말하던 모모코는 이치고와의 관계를 통해 서서히 변화한다.

다투고, 미안해하고, 그리워하며 누군가에게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된다.


'그녀는 방 안에 있는 옷장 속에 그녀의 비밀을 감췄어'. 영화 중 'She Said'라는 곡 가사의 한 구절이다.

외톨이인 '그녀'는 오로지 그녀의 옷장 속에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으며 인간의 감정에 회의적인 삶을 살아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인생은 계속 나아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녀는 왜 하필 옷장 속에 비밀을 감췄을까. 그래, 어쩌면 한 사람의 비밀을 담기엔 서랍은 너무 작을지도 모르겠다.


‘인생이 나아진다’는 건 어떤 상태를 말하는 걸까. 나는 감정 기복이 심하며 매우 예민한 사람이었고 우울은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일 년 전부터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약을 먹기 시작했는데 약이 잘 맞았는지 별다른 부작용 없이 몇 달 만에 감정 기복과 예민함이 상당히 줄어들었다. 감정 기복과 예민함이 나아지면서 우울증도 호전이 되면서 매우 차분해졌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화가 나는 것도, 짜증 나는 것도, 기쁜 것도, 슬픈 것도, 즐거움도 잘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무것에도 아무 감정이 들지 않았다. 오랜 우울증으로 무기력이 학습이 된 것일까, 나는 아무런 흥미도, 의욕도 없었다. 즐거워야 하는 순간에도 즐겁지 않았다. 나는 감정을 잃어버린 사람이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감정 기복과 예민함, 우울증이 상당히 호전됐다는 점에 만족했다. 예민하지 않아야 할 일에 예민하지 않게 되었고 감정 기복 때문에 일을 그르치는 일도 줄어들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줄어들었고 나는 이제야 겨우 ‘보통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여전히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는 우울이며 사람들을 피해 닫았던 마음의 문은 아직도 견고하다. 이런 인생은 나아졌다고 할 수 있을까?


나의 옷장에는 온갖 것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 뒤엉켜 있고, 잃어버린 내 감정들도 옷장 구석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버려야 할 것들을 버리지 못했기에 감정들을 찾기 위해 쉽사리 그 옷장 문을 열 수가 없다. 어떤 것들이 쏟아져 나와 나를 덮칠지도 모르겠고 아직은 그것들을 마주하고 정리할 용기가 없다. 하지만 언젠가 나의 옷장이 더 이상 아무것도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꽉 차서 터져버리는 순간이 온다면 회피하지 않고 하나씩 마주해 정리해 나가길 바란다. 그때까지 내 인생도 점점 나아지기를.



But then,

she said,"Life is getting better now"

Just said."Life is getting better now"

불량공주 모모코ost - She Sa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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