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의 이름은

또 오해영OST - 난 내가 여전히...

by 이윤주


"전 오해영이에요. '해'자는 여이가 아니고 아이.

고등학교 때 해영이가 다섯 명이었어요. 이해영, 김해영, 박해영, 오해영, 오해영.

심지어 오해영이 둘. 한집 건너 하나씩 해영이야 어떻게. 너무 막 지어대 이름을.."



극 중 한 학년에 '해영'이란 이름이 다섯 명이나 있었다고 말하는 오해영. 나의 경우에는 같은 이름은 물론 비슷한 이름까지 하면 열 명은 족히 넘을 것 같다. 학창 시절 누군가가 뒤에서 내 이름을 부를 때면 나는 바로 돌아보지 않았다. 조용하고 존재감 없던 나였기에 열에 아홉은 날 부르는 것이 아니었고, 내 이름이 아닌 비슷한 다른 이름을 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까. 극 중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해영아!" 하며 반갑게 뛰어오는 친구들을 보며 아무 표정 없이 지나치는 그냥 오해영. 아 그 모습이 어찌나 나와 같던지. 날 부르는 게 아니었는데 내가 대답하는 순간 서로 어색해지고 나만 바보가 되는 것 같은 상황은 만들고 싶지 않았으니까.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내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흔해 빠진 데다가 헷갈리기도 쉬운 이름이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이름을 말하면 한 번에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서 늘 두 번 세 번 한 글자씩 또박또박 말해야 하는 상황이 싫었고 이런 이름이 싫었다. 초등학교 시절 반장선거에 나갔다가 같은 이름의 아이와 후보에 오르게 됐고 그 때문에 투표가 꼬이는 상황도 있었다. 당시 결과는 일단 내가 당선이 된 것으로 처리되었지만 그날 저녁 투표 결과가 잘못되었다는 전화를 받고는 실망해서 엉엉 울었던 기억이 있다.



성인이 된 후 회사에서 컴퓨터 메신저로 업무를 할 때도(심지어 메신저에 이름이 표기되어 있음에도) 다른 이름으로 날 찾곤 했으며, 잠시 썸을 타다 연락이 끊겼던 남자와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그의 휴대폰에는 내 이름이 아닌 잘못된 이름으로 저장되어 있었다. 이런 일이 반복될 때마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넌 고작 이 정도의 존재감이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부터 이름이 잘못 불리어도 굳이 정정하지 않았다. 나는 고작 그 정도의 존재감을 가진 사람이었으니까. 어쩌면 나는, 다른 이름으로 살아야 했던 게 아닐까. 그랬다면 내 인생이 조금은 달라졌을까.



'이윤주'라는 이름은 언젠가 개명을 하게 된다면 바꾸고 싶은 이름이었다. 개인적으로 '윤주'라는 이름은 귀티가 나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유는 꽤 단순했다. 언젠가 봤던 드라마의 등장인물의 이름이 '윤주'였는데 그 역할을 맡은 배우가 매우 예쁘고 사랑스러웠고, 그 드라마뿐만 아니라 나에게 '윤주'라는 이름의 캐릭터들은 대체로 고급스럽고 밝은 이미지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윤주'라는 이름은 내 본명만큼 흔한 이름이지만 적어도 헷갈리거나 오타를 내기는 어려울 테니까. 하지만 막상 개명을 결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요즘은 개명이 어렵지 않다지만, 그 이후의 번거로움을 생각하면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그래서 개명을 하는 대신 글을 쓸 때 쓰는 필명으로 사용하기로 했고 지금은 꽤나 만족스럽다.



‘지혜롭고 아름다운 사람’

내 진짜 이름이 가진 뜻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이 이름으로 평생을 살아왔고 아마 앞으로도 이 이름으로 살아가겠지. 이렇게 이 이름으로 살다 보면 언젠가는 틀리지 않고 애정을 듬뿍 담아 불러줄 사람이 나타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난 내가 여전히 애틋하고.. 잘 되길 바라요, 여전히.."

- 또 오해영 中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인생은 점점 나아지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