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el Gallagher's HFB - Sail On
언젠가부터 매년 연말이 되면 유행하는 것이 하나 생겼는데 새해 첫날 처음 들은 곡의 내용에 따라 그 해 운세가 그렇게 흘러간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나는 새해 첫 곡에 대해 딱히 의미를 두지 않았던 터라 지금까지는 새해 첫날 무슨 노래를 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올해는 왠지 모르게 이런 미신을 믿어 보고 싶어졌다. 올해 나는 이런저런 몇 가지의 것들을 계획했고, 그것들은 새해가 되면 으레 하던 계획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올해만큼은 다짐의 농도가 조금은 달랐다. 나는 이제 정말로 달라져야 했고 지난날들로부터 벗어나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그래서 며칠 고민한 끝에 결정한 노래가 바로 Noel Gallagher's High Flying Birds의 'Sail On'이었다. 당시 연말에 한참 즐겨 듣던 노래이기도 했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이 노래의 가사가 꼭 내가 쓴 일기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자기 연민에 질리고 지쳤지만 그럼에도 내일을 기대하며 눈을 뜨는 나는 내가 있어야 할 곳을 찾아 떠나야 하고 매우 고되고 힘든 여정이 되겠지만 폭풍은 지나갈 것이고 나는 계속 나아가야 한다고.
'Sail On'은 유튜브에서 어떤 영상을 통해 더 좋아지게 된 곡인데, 영화 '싱스트리트'의 마지막 부분을 편집해 'Sail On'을 씌워 뮤직비디오처럼 편집한 영상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남녀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의 할아버지가 남긴 작고 낡은 보트를 타고 달키에서 런던으로 떠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무일푼의 어린 남녀 주인공이 출발하자마자 앞으로의 험난한 나날들을 예견하듯 비가 쏟아지더니 이내 폭풍이 몰아치고 커다란 크루즈에 가로막히게 된다. 하지만 남녀 주인공은 폭풍 속에서 그 커다란 크루즈를 향해 반가운 듯 웃으며 크게 손을 흔들고는 다시 런던으로 향한다.
'Sail On'은 인트로에서 빗소리로 시작이 되고 'Sail On', 즉 '바다로 나아간다'라는 가사로 이어진다. 화자는 그들이 많이 그립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내가 있어야 할 곳을 찾아 떠나야 한다고 말하는데 정말 노엘이 이 영화를 보고 영감을 받아서 쓴 곡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영화의 마지막 부분과 꼭 닮아 있었다. 그래서 'Sail On'을 들을 때 한동안은 영화 '싱스트리트'를 떠올리며 이입을 하곤 했었는데 어느 날엔가 문득 화자가 많이 좋아했던 카운터 뒤의 소녀는 연인이 아닌 화자 자기 자신을 말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나에게 안녕을 말하고 너는 내가 지나온 길이니 미련과 연민으로 가끔 뒤돌아 보기도 하겠지만 결국엔 너와 함께 앞으로 나아갈 거라고.
나는 한때 내가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어느 망망대해의 무인도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어떤 새들도 쉬어가지 않고 파도에 쓸려온, 아무 쓸모없는 것들로만 가득한 쓰레기 더미의 섬. 나는 수 백 수 천 번, 이 섬에서 탈출하려 했었다. 하지만 나는 늘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을 뿐이었고 절대로 이 섬을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올해의 나는 새해 첫 곡대로 운이 흘러간다는 미신을 한 번 믿어보려 한다.
나는 이 섬에 있는 쓸모없는 것들을 긁어모아 작은 보트를 만들어 바다로 나아갈 거야. 그리고선 카운터 뒤의 소녀에게 말할 거야, 내가 정말 많이 좋아했다고.
"Sail on, Tell the girl behind the counter
That I loved her once but soon I must be gone
Sail on, Tell the world I'm gonna miss them
But I've got to find a place where I belong"
Noel Gallagher's High Flying Birds - Sail 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