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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 윤종신 Sep 20. 2018

내가 죽으려 했던 것은*

젊은 작가가 쓰는 한남동에 대한 짧은 픽션 - 한남동 이야기

한 여자가 한남대교에 매달려서 자살을 시도하고 있었다. 유경은 통근 버스의 스크린을 통해서 그 소식을 접했다. 강남으로 향하는 470번 버스 안이었다. 화면 하단에 빨간 배경에 하얀 글씨로 ‘속보’라는 단어가 나타나기가 무섭게 버스를 가득 채운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뭐야, 무슨 일이야? 아무 의미가 없는 질문이었다. 버스가 을지로를 지날 무렵이었다.


한남대교는 자살하기에 좋은 장소는 아니었다. 바로 근처에 커다란 종합병원이 있어서, 자칫하면 과도한 의료적 처치를 받아 운 나쁘게 목숨을 건질 가능성이 너무 높았다. 군부대가 근처에 있다는 점도 마이너스 요인이었다. 그러니까 그녀가 정말 죽고 싶었다면 자살 시도 수 1위에 빛나는 마포대교나, 그에 뒤지지 않는 실적의 성산대교 따위를 찾아가는 쪽이 더 나았을 것이다.


버스가 모퉁이를 돌았다. 이번 정류장은 남대문 세무서, 서울 백병원입니다. 다음 역은 한남오거리입니다. 유경이 내려야 할 정류장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버스는 남산터널로 접어들었다. 뉴스 화면에는 한남대교에서의 자살 시도에 대한 속보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유경은 창밖을 보았다. 터널 안에 다닥다닥 붙은 타일밖에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제 웅성거리지조차 않았다. 그저 스마트폰 화면 위로 고개를 숙인 채 그녀의 아직 밝혀지지 않은 운명을 열심히 탐구할 뿐이었다. 유경은 버스에서 빨리 내리고 싶었다. 이렇게까지 출근을 하고 싶어서 견딜 수 없는 것은 처음 겪는 일이었다.


이상하리만치 할 일이 없는 날이었다. 개시를 한 지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시계를 보면 겨우 두 시간이 지나 있었다. 그 두 시간 내내, 유경은 도저히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벽장 안에 남아 있는 테이크아웃 잔의 개수를 세었고, 스팀기 노즐을 다섯 번씩 청소했고, 녹차 파우더 재고를 반복해서 확인했다. 손님은 오지 않았다.


자꾸만 오늘 아침 버스 안에서 들은 자살 시도자의 소식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런 거 함부로 궁금해하는 거 아니야. 싱크대의 물기를 문질러 닦으며 유경은 자기 자신에게 타일렀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정말로 죽고 싶다면 한남대교는 절대로 좋은 장소가 아니라는 사실을 꼭 알려줘야만 할 것 같았다.


마침내 가게 문이 열렸다. 한 무리의 여자들이 들어왔다. 옷차림을 보아하니 근처 주민 모임인 듯했다.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다니까. 누군가 그렇게 말하자 다른 일행들이 까르르 웃었다. 얘, 너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하고 그래. 유경은 죽어버리고 싶다고 한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했다. 그러나 일행은 곧 카페의 제일 안쪽, 기둥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는 소파 좌석으로 몸을 숨겨버리고 말았다. 라떼 두 잔, 아메리카노 두 잔, 모카 한 잔, 블랙 포레스트 케이크와 플로팅 아일랜드. 에스프레소 기계가 미세하게 진동했다.


그러니까 딱 한 번, 유경은 한남대교를 걸어서 건너본 적이 있었다. 옛 친구를 만나고 헤어진 후의 일이었다. 가로수길 근처에서 만나서 저녁을 먹고, 조금 산책을 하기로 했었다. 여름이었고, 밤공기가 후덥지근했다. 산책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 오갈 수 있는 대화의 양이 너무 적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그들은 침묵을 견디며 함께 걸을 수 있을 만한 사이도 아니었다.


친구는 곧 버스정류장이 나온다며 인사를 건넸다. 유경도 근처에서 지하철을 타면 된다고 대답했다. 거짓말이었다. 유경은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몰랐다. 친구의 모습이 멀어지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유경은 핸드폰을 켜서 지도 앱을 확인했다. 유경이 있는 곳이 어떤 중학교 앞이라는 것 빼고는 유의미한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하지만 집에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한남대교를 건너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친구가 걸어간 방향과 반대로 걷기 시작했을 뿐인데, 어느새인가 보도가 조금씩 가팔라지는가 싶더니, 눈앞에 큰 강과 한 방향으로만 뻗은 길이 펼쳐져 있었다. 유경은 잠시 고민했다. 걸어온 길을 되돌아가서 버스를 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유경은 걸음을 내디뎠다.


한강 다리는 생각보다 안전하지 않은 곳이었다. 인도와 차도의 구분이 희미했다. 유경은 다리를 걸어서 건너기로 한 것을 후회했다. 유경은 오른쪽을 보았다. 어느새 해가 완전히 져서, 하늘과 강이 구분이 가질 않았다. 두꺼운 습기를 뚫고 멀리서 건물들이 반짝거렸다. 예쁜 광경이었다.


오른발, 왼발, 오른발, 왼발. 유경의 왼편에는 시내버스와 자동차들이 연이어 달리고 있었다. 위협적일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유경은 시간을 확인했다. 퇴근 시간은 오래전에 지나 있었다. 유경은 열심히 발을 앞으로 움직였다. 자꾸만 시내버스가 내뿜는 미지근하고 독한 매연이 얼굴에, 팔에, 다리에 끼쳤다. 티셔츠가 땀으로 젖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맥주 마시고 싶다. 매연을 맞으며, 땀을 흘리며, 유경은 멍하게 생각했다. 마음만 먹으면 오른쪽으로 뛰어내릴 수 있었고, 왼쪽에서 무섭게 달리는 자동차들 사이로 뛰어들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 나을까. 유경은 무려 세 갈래로 갈라진 길 위에 서 있었다. 유경은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고, 다리는 걸으면 걸을수록 더 길게 늘어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선택지는 단 하나뿐이었다. 유경은 계속 걸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한남대교를 건너고 나니 한남오거리가 나왔다. 왼쪽으로 가면 큰 병원이 있었고, 오른쪽으로 가면 친구가 이야기했던 유명한 빵집이 있었다. 유경은 어느 쪽으로도 가지 않았다. 매연과 땀과 여름밤 공기에 절은 유경에게 필요한 것은 단 하나, 시원한 맥주였다.


오래 걷지 않아 유경은 맥줏집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침 바 자리가 비어 있었다. 유경은 바를 향해 걸어갔다. 친절한 바텐더가 유경을 환대해주었다. 유경은 맥주와 감자튀김을 시켰다. 오래 걸은 후에 마시는 맥주는 상큼하다 못해 신맛이 났다. 유경은 바 자리에 앉은 채로 가게 안을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을 지켜보았고, 흰 벽에 영사되는, 이름을 잘 모르는 외국 축구팀의 경기를 지켜보았고, 맥주를 한 잔 더 마셨고, 다트 게임에 끼어들었고, 처음으로 즐겁다고 생각했고, 다트 게임에서 패배한 탓에 한 잔을 더 마셔야 했고, 그렇지만 즐거웠고, 그렇게 생각하기가 무섭게 그날 먹은 것을 다 토해내고 말았다.


결국, 교대 시간까지 손님은 더 오지 않았다. 기껏 케이크를 주문해놓고 크림과 빵을 포크로 짓뭉개버리는 손님도, 테이크아웃 컵을 제대로 정리하지 않고 내다 버리는 손님도 용서할 수 있을 만한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도 오지 않았다. 불안할 정도로 평온한 하루.


유경은 동료들에게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섰다. 지금 버스를 타면 한남대교나 남산터널의 저 지독한 교통 정체를 겪을 것이 뻔했다. 그전에 저녁을 먹어두는 것이 현명했다. 유경은 한남오거리 근처의 편의점을 향해서 걸었다. 유경이 나온 바로 그 문으로, 너덧 명의 사람들이 들어갔다.


집으로 돌아와 뉴스를 확인해보니, 그녀는 약 세 시간가량의 저항 끝에 자살을 포기했다고 헀다. 그녀가 어떤 이유로 자살을 하고 싶어했는지에 대해서는 어떤 뉴스에도 나와 있지 않았다. 유경은 노트북 화면을 닫았다. 자야 할 시간이었다.


* 나카시마 미카(中島美嘉)의 싱글 <내가 죽으려 했던 것은(僕が死のうと思ったのは)>[2013, Sony Music Associated Records].



허희정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 『문학과 사회』 신인상으로 등단. 아름다운 것보단 예쁜 것을 좋아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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