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수준에 맞는 책을 빌려 왔다고 갑자기 책에 관심이 늘지는 않았다.
그래도 한 쪽에 한 줄 정도의 문장이 있는 것은 아이에게 부담스럽지 않은 듯했다.
어쨌거나 한 줄 정도의 문장은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고 빨리 책장을 넘길 수 있어서 덜 지루해했다.
그리고 내용이 단순해지자 책에 살짝 흥미를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이를 테면 주인공 아이가 이불을 가지고 숨박꼭질하는 내용이라든지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한 네뎃살 아이들의 반항기 있는 '싫어'라는 말로만 일상을 그려낸 내용, 반복적인 낱말이 계속되는 그림책 등으로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
책은 동화구연하듯이 실감나게 읽어주었다.
내가 책을 읽어줄 때도 계속 방안을 돌아다니며 딴짓을 할 때도 있고 옆에 앉아 있어도 자기 세계에 빠져 있기 일쑤였는데 회를 거듭해가던 어느 순간부터는 점점 관심을 보이는 것이 느껴졌다.
한별이 얼굴을 그림책에 들이밀며 관심을 보이던 어느 때 내가 낱말 하나를 가리켰다.
"한별이가 이거 읽어줄래?"
<그래! 이 닦지 말자>라는 최병대 작가 그림책이었는데 이 딱기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이닦는 상황을 재미있는 놀이처럼 그려낸 이야기였다.
아이가 이 닦기를 싫어하자 엄마는 칫솔을 가지고
그래! 이 닦지 말자
그럼 어디를 닦아 줄까?
어?
아하! 머리를 닦아줄까?
아니 아니
겨드랑이를 닦아 줄까?
아니 아니
눈을 닦아 줄까?
아니 아니
.....
이렇게 전개가 되는데 아이가 하는 말 '어?' '아니 아니'를 한별에게 해보라고 했다.
그러니까 그림책 읽기를 역할놀이처럼 시작한 셈이다.
내가 머리를 살짝 건드리며 '머리를 닦아줄까?'라고 하면 한별은 살짝 피하면서 '아니 아니', 겨드랑이를 간지르는 시늉을 내며 '겨드랑이를 닦아줄까?' 하면 한별은 정말 간지러운 듯이 자지러지게 웃으며 '아니 아니' 라고 했다.
아이는 재미있어하면서 잘해냈다.
물론 아주 단순한 단어의 반복이었지만 그 재미있는 경험이 책과 가까워지는 계기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