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나들이는 2주에 한번이었다.
한번 대출을 하면 2주 정도 반복해서 읽으며 책과 익숙해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한별과 함께 책을 읽는 요일은 화, 수 , 목 3일이었다.
나머지 요일은 한별의 일정이 늦게까지 있어서 집에서 함께 책 읽을 시간이 없었다.
3학년이 되면서 한별이 돌봄교실에 갈 수 없게 되자 한별의 엄마는 방과후교실과 발달치료센터, 운동을 일주일 내내 하게끔 신청했다.
그러면 귀가시간이 6시 가까이 되니 그만큼 집에서 티브이 볼 시간이 줄어들 것을 염두에 두고 자구지책으로 마련한 방안이었다.
그러나 신청한 방과후교실도 수요일은 인원부족으로 폐지됐고, 운동도 도장 측에서 매일은 무리라고 주 3회로 정해졌다.
그래서 화, 수, 목의 남는 오후 시간을 나와 온전히 보내게 된 것이다.
책을 읽는 시간은 처음에 5분도 되지 않았다.
두 권을 정하고 읽는데 5분도 안되는 그 순간조차 아이는 힘들어했다.
나머지 시간은 함께 영상을 보거나 레고를 하며 놀았다.
좀비 영상이나 기괴하고 잔혹한 영상들을 내가 무섭다고 싫어하자 아이는 가끔 다른 영상을 틀어주었다.
뽀로로, 꼬마버스 타요, 토마스와 친구들, 브래드이발소, 안녕 자두, 엄마까투리, 스폰지밥, 슈퍼윙스 등등이었다.
영상을 보며 나는 생중계하듯이 아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의 어휘로 발음에 신경쓰며 재미있게 전달하려 했다.
상황극처럼 할 때도 있고 어떤 상황인지 쉽고 단순한 말로 풀어주기도 하고 모르는 부분은 아이에게 물어보기도 하는 동안 조금씩 대화라는 게 생기기 시작했다.
한별은 혼자만 보던 영상을 누군가와 공유한다는 것이 좋았던 듯하다.
의미없이 들렸던 아이의 말과 행동들은 영상의 어느 장면에서 따온 것들이 많았다.
아이는 영상을 보다가 어떤 장면에 꽂히면 계속 그 장면을 돌려보면서 대사를 따라했다.
그러다보면 그 장면을 외우게 된다.
"선생님, 꼬마원숭이들이 소화기를 가져가버렸어요."
"그치. 불이 났는데 소화기가 없어져서 불을 끌 수가 없어."
소화기 사용법에 대한 애니메이션이었는데, 꼬마원숭이들이 장난감인 줄 알고 소화기를 가져가 버려 난감한 장면이 있었다.
그 다음에 아이와 내가 동시에 하는 말
"원숭이 나빴다!"
였다.
수십 번도 더 했을 것이다.
"오늘 센터에서 어땠어?"
발달상담센터 얘기가 나오면 자동으로
"앵무새 멈췄다!"
라고 소리친다.
발달상담센터의 앵무새 시계가 고장난 것인데 그게 그렇게 재미있을 사안인 줄은 모르겠다.
어쨌든 한동안 "앵무새 멈췄다!"가 둘만의 암호처럼 언제 어디서나 수시로 확인됐고, 그럴 때마다 한별은 자지러지게 웃었다.
자신이 하는 이야기를 알아들어주고 또 그에 대한 내용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이 신이 나서 한별은 계속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럴 때 아이의 눈동자는 반짝반짝 빛났다.
티키타카의 맛을 알게 된 것이다.
어느 영상 어느쯤에서 따온 내용인지 알아야 티키타카가 되기 때문에 나는 아이와 함께 영상을 꼼꼼히 봐야 했다.
아이도 나와 함께 영상을 보고 싶어했고, 나의 반응을 보고 싶어했고, 영상과 관련된 말들을 주고받고 싶어했다.
그러다 보니 한별이 주로 보던 기괴한 영상물들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동하는 차 안에서 주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한별의 발음이 서투르기 때문에 내가 알아듣지 못할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도 앞뒤의 정황을 재빨리 그려보면서 말을 던져본다.
그게 맞지 않으면 한별은 크게 상심한 표정이 된다.
그러면 다시 아이가 좋아하는 다른 영상의 한장면을 끄집어낸다.
거의 맥락없는 말잔치다.
옆에서 누군가 들었다면 '이런 아무말 대잔치라니, 둘다 어떻게 된 거 아냐?'라고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비록 어처구니없는 대화일지언정, 나도 아이도 전류가 통하듯 짜릿한 순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