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레고와 스팸 1

by 여르믄

"한별이, 엄마(를) 사랑해요."

한별이는 자신의 얘기를 3인칭으로 말한다.

'나'라는 단어를 들어보지 못했다.

또 거의 주어 서술어로 이루어지는 단순문장이고 길고 복잡한 이야기는 하지 못한다.

그러나 요즘 이렇게 한별이가 말하는 것을 본 한별의 누나는 번번이 놀라곤 한다.

"한별이가 2학년때까지는 정말 말이 없었어요. 한마디도 안했어요. 이렇게 말을 한다는 건 상상도 못했어요."

나와 처음 만났을 때 돌이켜보면 정말 그랬다.

형의 얘기로는 '그냥 혼자 이상한 소리만 하는' 아이였다.

한별이와 만난 지 반년이 지날 즈음에서야 이런 단순한 '말'이라는 것을 조금씩 주고 받게 됐다.

"한별이가 도와줬어요."

"한별이는 영어 잘해요."

"한별이도 도서관 가요."

한별이는 '사랑'이란 말을 자주 하는 편이다.

영상을 보거나 책을 보다가 '사랑'에 관한 내용이 나오면 덧붙여 자신의 '사랑' 얘기를 한다.

"레고도 사랑해요."

"스팸도 사랑해요."

엄마와 레고와 스팸은 한별이 가장 사랑하는 필수템이다.

한별이네 집 거실에는 한별이의 레고가 늘 널려져 있다.

레고를 좋아해서 귀가하면 티브이를 틀어놓은 다음 레고를 만지며 한동안 놀았다.

그리고 학교를 가거나 외출할 때는 반드시 작은 레고조각을 들고 나간다.

어떤 날은 샌드위치 레고, 다른 날은 컴퓨터 레고, 경찰 레고 등 손안에 쏙 들아갈 만한 작은 레고를 들고 다닌다.

잊어버리고 나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어쩌다 그런 경우는 집에 되돌아가서 레고를 손에 넣어야 외출이 가능했다.

그리고 한별의 또 다른 사랑, 스팸.

한별은 편식이 심하다.

밥반찬으로 오로지 스팸만 먹는다.

엄마가 다른 걸 먹여 보려고 애를 많이 썼지만 번번이 실패한 듯했다.

다른 걸 억지로 먹이면 토한다고 했다.

나도 처음에는 아이들이 안 좋아할 수가 없는 주먹밥시리즈나 볶음밥 같은 것으로 유혹을 해봤으나 한별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학교 급식은 아예 먹지 않았다.

아침도 안 먹고 등교를 하니까 1,2학년 때까지는 돌봄교실이 끝나는 오후 4시까지 한별은 고스란히 굶은 상태였다.

4시에 픽업해서 귀가후 밥을 차려주는데 그게 한별이 첫끼였다.

식단은 항상 똑같다.

따뜻한 쌀밥 한 공기와 프라이팬에 구운 스팸, 그리고 물이다.

어찌나 맛있게 먹는지 그제야 얼굴에 생기가 돈다.

3학년 들어서면서 돌봄교실 이용을 못하게 되고 방과후수업을 듣게 되었다.

하교시간과 방과후수업 사이에 한 시간이 비었다.

그 한 시간이 한별이한테는 얼마나 귀한 시간이었는지... 한해가 지나는 이즈음 알게 되었다.

그 한시간 동안 나는 한별을 집으로 데려가서 밥을 먹였다.

한시간 안에 집으로 데려가서 밥을 먹이고 다시 학교로 데려다 주려면 마음도 몸도 바빴다.

"선생님, 너무 배고파요."

하교시간에 학교 현관에서 만날 때 하는 한별의 인사다.

"스팸 밥 먹고 싶어요."

"스팸 밥 맛있어요."

"그래,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스팸 밥 해줄게. 얼른 집에 가자."

그러면 한별은 큰소리로 "네!" 하고 씩씩하게 대답했다.

한별은 오후 2시30분쯤에야 그날의 첫끼를 먹고 오후 일과를 시작했다.

그리고 2학기 들어서서는 방과후수업이 끝나고 돌아와서 또 밥을 달라고 했다.

그래서 오후 시간에 한별은 두끼를 먹게 됐다.

몇 달 전부터는 메뉴가 하나 늘었다.

귤 하나가 추가된 것이다.

심한 편식이지만 밥량은 남자어른이 먹는 것 이상이었다.

성인용 밥그릇에 고봉밥으로 먹으니 한별이네 밥솥은 거의 한별이 차지였다.

일년 동안 한별은 키가 크고 살도 조금 붙었다.

여윈 듯하던 얼굴도 살이 살짝 오르면서 활기차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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