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 한별아! 왔어?"
"엄마!"
모자상봉은 항상 눈물겹다.
가끔 한별의 엄마와 엘리베이터나 주차장 혹은 집에서 마주칠 때가 있다.
그러면 엄마는 두 팔을 한껏 벌리며 아이를 품었다.
"일루 와~ 이야~ 이야~ 사랑해~"
마치 몇 달 만의 해후처럼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아이를 품에 꽉 껴안아서 아이는 숨이 막혀 버둥댄다.
아이는 엄마 볼에 뽀뽀를 한다.
엄마는 내가 옆에 있는데도 아이를 놔줄 생각이 없다.
"엄마 사랑해? 얼마나 사랑해?"
계속 소리를 지르면서(목소리가 커서 소리를 지르는 것처럼 들린다) 아이를 껴안고 두들기고 뽀뽀하고 부벼댄다.
놀랍게도 매번 그랬고 나는 매번 경이로운 장면을 보듯이 모자상봉을 지켜보게 된다.
한별의 엄마는 베트남 사람으로 결혼을 세 번했다.
베트남에서 두 번 결혼했는데 첫번째 결혼에서 딸을, 두번째 결혼에서 아들을 낳았다.
세번째 한국 사람과 결혼해서 한별을 낳았다.
남편은 한별을 낳은 지 두 해만에 세상을 떴다.
그는 좋은 아빠이자 남편이었던 것 같다.
베트남에서 낳은 두 아이까지 한국으로 데리고 와서 살았다.
한별의 형은 아빠가 퇴근하고 돌아와서 놀아주던 얘기를 자주 했다.
소파에서 아빠랑 장난치던 일들, 장난감 사주던 일, 엄마는 자기를 야단치지만 아빠는 항상 잘 받아주었다 한다.
거실에 그들 다섯 식구의 모습이 담긴 가족 사진이 여러 개 걸려 있다.
사진 속 아빠는 인자하고 소탈해보였다.
한별의 엄마가 카톡프로필에 올려놓은 남편의 사진엔 '그리워요'라는 문구가 있다.
남편이 세상을 뜨면서 한별의 엄마는 졸지에 어린 세 아이를 부양해야 하는 가장이 됐다.
낯선 이국 땅에서 세 아이를 키우며 생계를 이어간다는 게 여간 녹록치 않은 일이다.
의료기기를 조립하는 회사에 다니며 집에서도 틈나는 대로 부업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별의 엄마 첫인상은 건강하고 밝았다.
각기 다른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삼남매도 사이가 좋았다.
누나와 형은 한별이를 아기 대하듯했다.
고등학생인 누나는 아예 '우리 애기'라고 부르면서 엄마처럼 한별이를 돌보고 야단치고 가르쳤다.
그런데 두 살 위인 형은 좀 헷갈리는 입장이었다.
"얘는 나보다 두 살밖에 차이 안나는데 집안 일도 하나도 안하고요, 다 봐줘요. 완전 차별이에요."
라고 불평을 쏟아놓는가 하면
"아이구 우리 애기 귀여워~"
하며 한별이 볼을 꼬집거나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귀여워 어쩔줄 모르는 표정이다.
아직 어리기 때문에 남매간에 소소한 다툼은 있지만 대외적인 일에는 한팀으로 똘똘 뭉치는 분위기다.
한별의 엄마는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굵은 미인형인데 살집이 있어 여장부 같은 인상이었다.
섬세하고 부드럽기보다 단순명쾌한 쪽 같았다.
아이들에게도 마음을 헤아리며 다독이기보다 해줄 건 확실하게 해주었고 요구했고 아이들도 군소리없이 맡은 일을 했다.
쓰레기분리수거나 청소, 빨래, 간단한 밥짓기 등 웬만한 집안 일은 형과 누나가 했다.
형과 누나는 눈치가 빠르고 일머리도 있었고 또래에 비해 어른스러웠다.
"엄마가 좀 부드럽게 말하고 감싸줬으면 좋겠어요. 너무 목소리도 크고 무뚝뚝하고 거칠게 말해요."
한별의 형은 엄마에 대해 불만을 말하기도 했다.
위 남매에게 엄한 엄마가 한별에게만큼은 완전 무장해제가 되니 고작 두 살 위인 형은 질투가 날 만도 했다.
어쨌거나 한별은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어서인지 구김이 없고 밝았다.
그래서 자주 듣게 되는 한별의 말,
"엄마 제일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