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별아, 조금 쉬다가 다섯시 삼십분에 책 읽을까?”
“네!”
대답을 하자마자 한별은 휴대폰에서 시계 모양 앱을 찾아 다섯시 삼십분 알람 설정을 한다.
알람 설정하는 방법을 한번 가르쳐 주었더니 이제는 스스로 척척 해낸다.
물론 처음엔 설정을 하고 저장을 누르지 않아서 하염없이 알람을 기다릴 뻔한 적도 있었지만 그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가 됐다.
“선생님, 저장했어요.”
저장을 꼭 확인하는 습관이 된 것이다.
알람을 시작한 건 영상을 보다가 책을 읽으려니 분위기 전환이 힘들어서였다.
한참 영상에 빠져든 한별이한테 “자 이제 티비 끄자. 책 읽을 시간이야”라고 말하지만 아이는 멈추질 못했다.
몇 번 얘기해서야 겨우 티브이를 껐다.
티브이를 끄고서도 머릿속은 아직 티브이 속에 있는지 휴대폰을 켜거나 초점 없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방황하고 있다.
그래서 티브이를 보기 전에 미리 약속을 한다.
알람 소리가 울리면 책읽는 거라고.
알람은 스스로 저장하게 했는데 한별은 휴대폰의 새로운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자발적으로 시간을 정하는 것이 좋았는지 선뜻 응했다.
“몇 시에 책 읽을래?”
물으면
“다섯시에 읽어요.” 혹은 “다섯시 삼십분에 읽어요.”
하면서 알람 설정을 한다.
물론 시간 개념은 아직 없고 시계를 읽는 방법도 알지 못한다.
오후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밥을 먹고 이삼십분 휴식하고 나면 다섯시 반 정도가 된다.
그렇게 해서 한별이와 상의했고 알람 시간을 정했다.
알람이 울리면 스스로 티브이를 끄고 책읽기 자세를 잡는다.
알람이 한별이 머릿속 잔여 영상까지 싹 꺼버렸는지 분위기 전환이 깔끔해졌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가족들도 나도 신기할 따름이다.
한별이와 만남 초반을 떠올리게 된다.
한별이 오른손에는 리모컨이 늘 붙어있었다.
형과 장난을 칠 때도, 화장실에 갈 때도, 심지어 숟가락을 잡아야 할 때조차도 리모컨은 이쪽저쪽 손을 오가며 놓지 않았다.
리모컨으로 조종하는 손놀림이 얼마나 자유자재로 빠른지 티브이 속 장면은 맥락도 없이 정신없이 바뀌곤 했다.
검색을 하려면 자음 모음을 연결시키며 단어를 만들어야 하는데 뜻밖에도 그 속도가 빠르고 정확해서 또 놀랐다.
물론 초성을 치면 검색난 아래에 주르르 달려오는 제목들이 도우미역할을 하지만 말이다.
먹방 쇼츠가 한바퀴 돌고 귀신이 이방 저방 돌아다니는가 하면 톰과제리가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며 지나가고 또다시 먹방, 총쏘며 달려가는 게임 등등 눈 깜박할 사이에 화면이 왔다갔다 했다.
게다가 영상만큼이나 한별이의 언행도 정신없었다.
좀비 흉내를 내면서 거실을 돌아다니고 다리가 안보일 정도로 달려가다가 넘어지는 시늉을 하고 기괴한 소리를 지르고 티브이와 친구처럼 재미있어하며 놀았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알람을 끄고 책읽기 모드로 전환해서 책장을 넘기고 있다.
오히려 내가 문제다.
자꾸 예전 한별이 모습을 떠올리는가 하면, 지금 모습이 너무 예뻐보여서 입을 못 다물고 있질 않나...
아이는 벌써 책 속으로 들어갔는데 내 머릿속은 아직도 이리저리 왔다갔다 바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