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읽을래요!

by 여르믄

책 읽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처음엔 아주 짧은 그림책 두 권을 읽는 것도 힘들어했는데 어느새 다섯권씩 읽게 되었다.

글자가 많은 것은 아직 힘들어서 한쪽에 두세 문장 있는 것과 열 문장 정도 되는 것 등 적당히 섞어서 대출한다.

얼마 전에는 열 권을 대출받았다.

도서관 PC에서 검색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더니 흥미를 느낀 한별이가 갈 때도 안됐는데 도서관에 가자고 했다.

반납하지 않고 연달아 대출받다 보니 열 권이 된 것이다.

그 책을 다 읽는 것은 아니다.

읽을 책 가져오라고 하면 항상 읽는 책만 들고 온다.

나머지 다섯권은 들춰보지도 않고 반납했다.

그래도 어쨌든 책을 고르면서 제목이라도 봤을 테고 이런 책이 있구나 알게 되기도 할 테니 나쁠 것은 없었다.


글자가 많고 쪽수도 많은 책은 읽어줄 때 신경을 쓴다.

빨리 지루해질 수 있기 때문에 목소리 연기는 물론 손짓까지 동원할 때도 있다.

<어디 갔어,ㅓ> (유은미 글,그림)는 한글 원리를 풀어낸 그림책인데 한별이한테는 호흡이 긴 책에 속했다.

본문은 내가 읽고 예시로 나온 낱말들은 한별이가 읽도록 하며 여러 날을 읽었다.

그러던 어느 날 책읽을 준비를 하고 소파에 앉았는데 한별이가 <어디 갔어,ㅓ>를 손에 들고 말했다.

“혼자 읽을래요.”

이럴 수가!

그동안 "혼자 읽어볼래?" 하고 여러 번 권했었다.

그럴 때마다 아이는 고개를 흔들며 책을 밀어내곤 했다.

그러던 아이가 혼자 읽겠다고 나섰다.

“그래그래. 한별이 혼자 읽어 보자.”

나는 너무 기뻐서 좀 흥분도 됐지만 아이에게 티를 내지 않으려 애썼다.

한별이는 부끄러운지 내게서 등을 돌려 혼자 떠듬떠듬 책을 읽기 시작했다.

누나가 방에서 듣고 나오더니 한별이 옆에 서서 놀란 표정으로 책 읽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러자 한별은 신경이 쓰이는지

“누나, 저리 가.”

라고 했고 누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모음ㅓ가 ㅇ를 찾아 떠나는 모험을 한별이는 실감나게 읽었다.

대사에 걸맞게 때로는 버럭 소리치고 때로는 애절하게,

책 읽는 중간 가끔 뒤돌아 눈도장을 찍듯이 나를 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엄지척 하며 응원해준다.

집중하는 모습이 혼자만 보기가 아까워 영상으로 녹화했다.

비록 등돌린 모습이었고 떠듬거리는 소리였지만 이렇게 또 하나의 산을 넘고 있는 것이다.


한별이 책 읽는 영상을 한별의 엄마에게 카톡으로 보냈다.

“오늘 한별이가 긴 책을 혼자 읽었어요. 너무 대견하네요. 칭찬 많이 해주세요.”

라는 메모와 함께.

모든 아이들이 그러듯이 한별이도 엄마가 해주는 칭찬을 무척 좋아한다.

가끔 한별이가 나아지는 모습을 보일 때마다 나는 한별이 엄마한테 카톡으로 알려주고 칭찬을 부탁하곤 한다.

‘오늘 학교 보조선생님께서 한별이가 2학기 들어서 쓰기 읽기를 잘하고 있대요. 문제도 스스로 읽어서 풀고 글씨 쓰기도 잘한답니다.’

‘발달상담센터 선생님께서 요즘 한별이가 말을 참 잘하고 많이 늘었다고 하셔요.’

‘한별이가 요즘 키가 크려는지 오후에 밥을 두 번이나 먹어요.’

‘합기도 관장님께서 한별이 요즘 규칙을 잘 알고 따라하니 내년부터는 매일 나와도 되겠답니다.’

한별이 엄마가 칭찬하는 광경은 안 봐도 훤하다.

아마도 한별이가 숨도 못 쉴 정도로 껴안고 비벼대며 잘했다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내 뒷작업을 어떻게 알았는지 칭찬의 맛을 알게 된 한별이가 요즘은 내게 대놓고 부탁하는 것이다.

“엄마(한테 한별이) 칭찬(하라고) 해주세요,”

물론 아무 때나 그러는 것은 아니고 스스로 자랑스러운 일을 했을 때이다.

아무 욕심 없어보이는 한별이가 이런 적극성을 보이는 걸 보면 엄마 칭찬만큼 좋은 약은 없는 것 같다.


그 뒤로 형의 얘기를 들어보니 한별이는 침대에 엄마와 같이 누워서 그 책을 읽는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이삼일 동안 그 영상을 여러 번 돌려봤다.




매거진의 이전글오후5시 알람의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