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조용히 할 수 있어!

by 여르믄



하루 일정이 끝나고 헤어지기 전에 항상 ‘참 잘했어요.’ 말도장을 찍는다.

“한별아 오늘도 수고했어. 학교 갔다오고 밥도 맛있게 먹었고 방과후수업도 열심히 했어. 참 잘했어.”

그리고 내일 일정을 간단하게 얘기해준다.

“한별아, 내일은 학교 끝나고 방과후수업 영어만 있는 날이야.”

“선생님, 도서관?”

‘네.’라고 대답하지 않고 ‘도서관’을 떠올리는 걸 보니 내일 일찍 끝나니 도서관에 가고 싶은 모양이었다.

‘아니, 오늘 도서관에 갔다왔는데 내일 또 가자는 말이야?’ 나는 뜻밖의 상황에 잠시 머뭇거렸다.

도서관 나들이는 2주에 한번 하기로 되어 있다.

물론 내가 혼자 정한 원칙이었고 꼭 지킬 필요는 없으나 한별이가 연이어 계속 가자고 할 줄은 예상치 못했다.

한별이가 도서관 에티켓을 지키지 못하기 때문에 도서관에 가면 내가 신경을 많이 써야 해서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 날도 한별이는 도서관에서 소리를 내며 돌아다녔고 나는 책을 고르다 말고 몇 번이나 가까이 다가가 주의를 줘야 했다.

그러니 도서관에서는 빨리 책을 골라 나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늘 바쁘다.

“도서관에 또 간다구?”

옆에서 듣던 누나가 토끼눈을 뜨면서 묻는다.

“도서관 재밌어요!”

씩씩하게 대답하는 한별.

“그래 가자. 가고 싶을 때 가야지.”

그 마음이 변할까봐 나는 얼른 대답해줬다.

도서관이 재미있다는데... 얼마든지 가야지.

“네!”

안 그래도 톤이 높은 한별이 목소리가 더 높다.


다음날 방과후수업이 끝나고 차에 타자마자 한별은 또다시

“선생님, 도서관?”

하고 묻는다.

“그래, 지금 도서관 갈 거야.”

한별은 기억력이 좋은데다 한번 말한 것이나 약속한 것을 꼭 지킨다.

그런데 도서관에서 조용히 해야 한다는 것은 매번 지켜지지 않았다.

그 날도 가면서 강조했다.

“한별아, 도서관에서 조용히 해야 돼. 알았지?”

“네! 비 콰이엇.”

한별은 신이 나서 영어까지 써가며 다짐했다.


어린이도서실에 들어가자마자 한별은 책을 세 권 꺼내왔다.

나는 한별을 데리고 맨끝 방으로 들어갔다.

입구에서 반대쪽이고 가장 멀리 있어서 소리를 내더라도 눈총을 덜 받을 것 같았다.

들어가면서 방문객들이 얼마나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한별이를 데리고 다니며 생긴 습관이다.

고학년으로 보이는 여학생 둘이 벽면에 붙은 책상에서 공부하고 있고 엄마와 같이 온 아이들이 소파에서 책을 보고 있고 서가에서 책을 고르는 아이들이 서너 명 보였다.

또 유아도서실에는 아빠 엄마가 함께 서너살쯤 돼보이는 아기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었다.

그리고 제일 신경쓰이는 사서 선생님은 오늘도 분주히 실내 여기저기를 오가고 있다.

이들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 끝방은 삼면이 둥그런 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 벽을 따라 낮은 소파가 둥글게 설치돼 있는 아늑한 방이다.

한별이 가져온 책들은 예전에 빌렸던 책들이었다.

방에 엎드리더니 혼자 떠듬떠듬 읽는다.

볼 때마다 신기한 장면이다.

두 권을 혼자 읽더니 힘든지 한권은 읽어달라고 해서 같이 읽었다.

잘했다고 엄지척하며 칭찬을 해주었다.

그런데 책을 다 읽은 뒤 한별은 휴대폰 게임을 하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다시 말소리가 커지는 것이다.

방 밖에서 책을 고르던 두 명의 아이가 시끄러웠는지 방 안을 들여다봤다.

한별이는 집안에서처럼 아주 편안한 자세로 바닥에 엎드려 게임을 하고 있다.

한별이는 도서관이 편해졌는데 내가 좌불안석이다.

“한별아, 조용히 해야 돼.”

입술에 검지를 갖다대며 또 주의를 주었다.

“30분만 있다가 집에 가자.”

한별에게 알람을 저장하게 했다.

그리고 나서부터였다. 한별은 조용해졌다.

게임을 하고 있을 때는 혼잣소리가 크게 나곤 했는데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조용한 한별이가 갑작스러워서 속으로 놀랐다.

우연히 말이 없어진 건지, 조용해야겠다는 의지에서 나온 행동인지, 슬쩍 살펴봤다.

한별은 스스로 조용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말을 안 할 수는 없어서 아주 작게, 자기 혼자 들릴 정도로 하며 자제하고 있었다.

잘하고 있는데 괜히 확인하고 싶어서 말을 걸었다.

“한별아, 책 다 봤어?”

그러자 한별이가 나를 보며

“조용하는 거야.”

라며 입술에 검지를 갖다대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대견한 표정이다.

30분 뒤 알람이 울리고 도서관에서 나올 때까지 한별의 노력은 계속 됐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칭찬을 해주었다.

“한별아, 도서관에서 조용히 한 거 참 잘했어. 한별이가 조용히 할 수 있으니 도서관에 자주 갈 수 있겠어.”


그 날을 계기로 한별이는 도서관에서 조용히 있을 수 있었다.

아이들의 변화는 어느 순간 이렇게 선물처럼 다가온다. 한걸음, 한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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