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길을 잃어버렸어요.”
방과후수업이 끝날 즈음에 한별이한테서 전화가 왔다.
방과후수업이 조금 일찍 끝난다거나, 픽업시간에 내가 조금 늦을 때가 가끔 있다.
“한별아, 다른 데 가지 말고 거기 주차장에 있어야 돼. 선생님 금방 도착해.”
차분하게 한별이를 안심시킨다.
“한별이가 길을 잃어버렸어요.”
당황할 때는 같은 말을 반복하기도 한다.
“한별아, 거기 그대로 있어. 선생님 다 왔어.”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당황스러웠다.
한별이가 매일 이동하는 경로가 아닌 다른 곳에서 헤매고 있는 줄 알고 빨리 찾아야 된다는 급박함과 찾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한꺼번에 덮쳐왔다.
그런데 한별이는 항상 나와 만나는 그 자리, 주차장 한구석에 서 있었다.
그러면 그렇지. 한별이 특성상 한번 가르쳐준 경로나 방법은 잊어버리거나 탈선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오히려 그 루틴을 지켜야 하는 강박이 있다.
내 차를 보자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
“선생님, 길을 잃어버렸어요.”
아하, 나는 금세 그 말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수업이 끝나고 주차장으로 나오면 내가 보여야 하는데 안 보여서 ‘길을 잃어버렸다’고 말하는 것이다.
“한별아, 선생님한테 전화한 거 정말 잘했어. 앞으로도 길을 잃어버리면 꼭 전화해야 돼.”
“네!”
좀 늦어도 선생님이 꼭 데리러 온다는 믿음이 생기자 한별이는 전화를 하면서도 당황한 기색이 없었다.
‘길을 잃어버렸다.’는 말로 자신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렸고, 나는 ‘금방 도착한다.’는 말로 재차 안심시켰다.
길을 잃어버렸다는 표현은 한별이가 즐겨 보는 애니메이션 <엄마 까투리>의 어느 장면에 나오는 말이다.
아기 까투리가 혼자 어딘가를 가다가 아저씨를 만나서 “숲속에서 길을 잃어버렸어요.”라고 말하자 아저씨는 “친구들이 너를 찾고 있겠구나.”라고 한다.
한별이는 종종 혼자서 그 장면을 연출하곤 했다.
(아주 귀여운 아기 목소리로) “숲속에서 길을 잃어버렸어요.”
(최대한 굵은 저음으로 아저씨 흉내를 내며) “친구들이 너를 찾고 있겠구나.”
한별이는 그런 식으로 대사를 여러 번 반복하며 배우는 말도 많았다.
애니 속 상황과는 좀 달랐지만 한별이는 주차장에서 내가 안보이자 길을 잃어버린 느낌이었나 보았다.
잘못된 표현임은 분명했으나 왠지 나는 바로 고쳐주지 못했다.
‘길을 잃어버리다’
그 문장이 주는 울림이 한동안 몸을 사로잡았다.
바삐 길을 가다가 멈춰서서 길을 잃어버린 걸 알아차린 느낌이었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그 순간 주변은 물론 내 자신조차 낯설었다.
그 날 오후 내내 그런 감정이 향수처럼 머물렀다.
길을 잃어버린다는 건 자신을 온전히 느끼는 일이다.
처음 길을 잃어버렸던 때는 언제였을까.
선명하게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5학년쯤이었을 게다.
학교에서 집으로 오려면 조금 경사가 있는 언덕을 넘어야 했는데, 그 언덕에서 우리 집이 보였다.
어린 동생들이 북적거리고 집안일에 치여 늘 힘든 어머니가 있었다.
집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나는 맏딸이자 큰언니로서 역할만 있을 뿐이었다.
언덕 꼭대기 부근에서 언제부터인지 하늘에 계신 분께 기도를 했다.
바로 지금 이곳을 떠날 수 있도록 나에게 동아줄을 내려달라고.
기도는 갈수록 길어지고 간절해졌다.
시작은 그랬는데 하늘에 계신 그 분은 너무나 튼튼한 동아줄을 주셨다.
그 언덕에서 물 건너 산 너머 나는 참으로 멀리도 왔다.
근원적인 상념에서 나오려면 한별이한테 물어보면 된다.
“한별아 길을 잃어버렸을 땐 어떻게 하지?”
“전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