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중이라 오전 일찍 방과후수업을 듣고 귀가후 밥까지 먹고 잠시 휴식시간이다.
한별이와 함께 티브이 앞에 앉아 있었다.
갑자기 한별이가 티브이를 끄더니 슬금슬금 내 곁으로 무릎걸음하며 다가온다.
나와 눈맞춤을 하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가까이 다가오더니 나를 껴안으며 볼에 뽀뽀를 하는 게 아닌가.
“선생님!”
“엉?”
“숨바꼭질해요.”
얼결에 뽀뽀를 당한 나는 웃고 말았다.
이럴 땐 영락없이 아기다.
한별이는 나와 숨바꼭질하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오후에 일정이 일찍 끝나 여유가 있을 때 가끔 하는 놀이다.
어쩌다 보니 술래는 항상 나였다.
패턴도 항상 똑같다.
한별이가 손가락으로 베란다 쪽을 가리키며
“저기 봐요.”
라고 말한다.
내가 그 쪽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한별이는 안방으로 뛰어가 문을 닫는다.
이제 일어나서 한별이를 찾으러 간다.
“한별이 어딨나?”
안방으로 들어가서 침대 위를 두드리고 이불을 들춰보는 척한다.
물론 한별이가 어디 숨었는지는 알고 있다.
그 사이에 안방 문 뒤에 붙어 있던 한별이는 거실로 뛰어간다.
거의 대부분은 베란다 커튼 뒤에 숨는다.
“어? 여기 없네? 어디로 갔지?”
나는 그 모든 기척을 모르는 척하며 안방을 나온다.
그리고 이제부터 연극이 시작된다.
“한별이 어디 숨었지? 형아 방에 가볼까? 형아 방 이층 침대 이불 속에서 레고하고 있나? 어? 없네? 그럼 누나 방에 있나? 누나 방 침대 밑에서 몰래 라면 먹고 있나? 어? 여기도 없네. 냉장고 안에서 소세지 먹고 있나? 토마스 기차 타고 소풍 갔나? 슈퍼윙스 도와줘요......”
이런 식의 아무말 대잔치를 하며 이 방 저 방 배회하는 동안 베란다 커튼 뒤에서는 웃느라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다 웃음을 참지 못하고 커튼 밖으로 쓰러진 한별이가 보인다.
“카하하하하......”
거실을 뒹굴며 온몸으로 웃는다.
“앗? 찾았다. 여기 있었네.”
“선생님 저기 봐요.”
그러면서 또 안방으로 달려가 문뒤에 숨는다.
몇 번이고 반복, 또 반복이다.
그게 그렇게 재미있는지 한별은 내가 스톱시키지 않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계속할 것이었다.
한별이와 내가 하는 그 숨바꼭질은 지상에 단단히 발을 딛고 있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놀이다.
어디에 숨는지 다 알 수 있고, 눈 앞에 있는데 왜 못 본 척하는지.
나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한별이가 이끄는 대로 놀았던 것뿐이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그 연극(?)을 하면서 내 자신도 모르게 즐기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한바탕 숨바꼭질을 하고 나면 둘 다 기진맥진해진다.
한별이는 웃느라, 나는 연극하느라.
한별이는 조용해지고 내 머릿속은 비워져 있다.
그런데 방학중에는 누나와 형이 다 집에 있었다.
숨바꼭질을 하려면 온 집안을 다 헤집고 다녀야 되는데다 형과 누나 앞에서 연극을 할 수는 없었다.
뽀뽀까지 하며 애원하지만 어쩔 수 없다.
“한별아, 형이랑 누나한테 방해돼서 안 돼.”
“선생님, 한번만.”
한별은 포기할 기세가 아니다.
나로서도 사실 뽀뽀까지 받아서 거절하기가 너무 어렵다.
“그럼 딱 한번만이야.”
안방과 거실만 사용해서 간단하게 끝내야겠다 싶었다.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선생님, 저기 봐요.”
한별은 신이 나서 안방으로 뛰어간다.
“한별이 어디 있나?”
안방 문을 열고 들어가 침대를 두드리는 사이 한별은 거실로 달아났다.
“어? 침대 속에 없네. 어디 숨었나?”
거실로 나오는데 형 한주가 궁금했는지 자기 방문 앞에 서서 보고 있었다.
“쟤 베란다 커튼 뒤에 숨었어요. 다 보이잖아요.”
"........."
한별이와 나는 그만 얼음이 돼버렸다.
숨바꼭질은 그렇게 단 몇초만에 끝나 버렸다.
한별이도 나도 바람 빠져버린 풍선처럼 멋쩍게 웃을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