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떡’이라는 애증의 도가니

by 여르믄



종업식을 하고 2월말까지 긴 겨울방학이 시작됐다.

방학 동안에는 활동지원서비스를 오전에 하게 됐다.

오전9시에 방과후수업이 있고 끝나면 집에서 정오가 될 때까지 밥도 먹고 공부도 하고 책도 읽는다.

그러다 보니 두 살 위인 형 한주와 서비스 시간 대부분 한공간에 있게 된다.

한주는 보면 볼수록 재주도 많고 매력이 있다.

학습을 자기주도적으로 해나가고 한국어 베트남어를 잘해서 이중언어 말하기대회에 해마다 나가 입상할 정도로 실력도 있고 적극적이다.

취미도 다이어리꾸미기, 키링이나 인형만들기, 요리하기, 스트레칭, 멋지게 옷입기 등등 어디 하나 버릴 것 없이 좋은 것들을 즐겨했다.

여느 아이들이 즐겨 함직한 게임엔 흥미가 없고 어떻게 하면 자신을 잘 가꾸고 돋보일 수 있는지 관심이 많다.

성격은 섬세 꼼꼼하고 여자아이들처럼 수다스럽고 삐치기도 잘하고 부당한 사안에 대해서는 정당한 논리로 따질 줄도 알았다.

장래 꿈도 계속 바뀌고 있어서 디자이너, 네일아트, 인테리어 전문가, 통역사 등으로 옮겨가는 중이다.

내가 출근하면 거의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쉴새없이 조잘거리고 자신의 작업물(?)들을 자랑하고 싶어했다.

주방에서 한별이 식사를 준비하고 있는데 계속 “이거 보세요.” 하며 오전에 필기한 노트라든지 어제 만든 공작품이나 액세서리들을 보여주느라 바쁘다.

“한주야, 한별이 밥 준비해야 되서 지금 보기가 힘들어. 이따 제대로 볼게.”

첫째는 첫째라서 역할이 주어지고 주목을 받는다.

막내는 막내라서 조건없이 귀엽고 집안의 힐링포인트다.

어중간한 둘째들은 관심에 목마르고 외로운만큼 내적 성장도 빠르다.

그런데 자식을 키워본 입장에서 보건대 억울하기로 치면 위아래 할것없이 다 똑같다.

한주는 자신의 처지를 너무나 잘 안다.

“누나는 나한테만 집안일을 다 시켜요. 쓰레기 분리수거, 청소, 빨래, 어떤 땐 자기 밥까지 차려달래요. 동생요? 쟤는 그냥 먹고 놀기만 하다가 엄마 오면 막 달려가서 뽀뽀하잖아요? 나도 엄마한테 가서 안기려고 하면 나를 막 밀쳐내요. 절대 엄마 가까이 못 가게 해요.”

말만 들어도 서럽다.

그래서인가 독립심도 강하고 잘하려는 욕심도 크다.

감성이 풍부하고 정이 많은 한주는 학교에서 동생을 만나면 반가워서 부르며 달려간다.

그러나 눈길도 안 주고 제갈길로 가버리는 한별이 때문에 상처를 받는다.

그리고 집에 와서 동생한테 따진다.

“야, 너 왜 아까 내가 부르는데 쌩깠어? 어? 내가 부르는데 왜 그냥 갔어? 왜 그랬냐고? 아 짜증나! 너 때문에 짜증난다고!”

형이 속터지건 말건 아랑곳없이 티브이만 보는 한별이.

“선생님 한별이는 완전 극T예요. 쟤는 학교에서 나를 봐도 인사도 안해요. 자기 필요할 때만 좋아한다고 하고요. 그때 말고는 내 말도 잘 안 들어요. 아 짜증나,”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MBTI 성격유형중 한별은 ‘지독하게 이성적인 극T’로, 자신은 ‘너무나 감성적인 극F’로 규정하면서 한주는 극T 사례를 늘어놓는다.

“선생님, ‘우울해서 빵 샀어?’라고 물으면 F는 ‘무슨 일 있어?’라고 하고 T는 ‘무슨 빵 샀어?’라고 하잖아요. 근데 쟤는 아예 묻지도 않고 쌩까요. 그러니까 극T죠. 아니 극극T.”

한주는 씩씩대다가 배가 고픈지 가방에서 과자를 꺼내더니 먹기 시작했다.

과자봉지 뜯는 소리를 듣고 한별이 흘깃 관심을 보이더니 달려온다.

“형아 나도!”

한별이 다가오자 한주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이다.

“이럴 때만 형이지? 얘는 항상 이렇다니까요. 자기가 필요할 때만 형이래요.”

그러거나말거나 과자만 뚫어져라 바라보는 한별이다.

“에이그. 자. 하나만 먹어. 너 또 그러면 안된다. 알았지?”

한주는 과자를 한별이 입속에 넣어주고 아기새처럼 받아먹은 한별은 무심한 표정이다.

“아이 귀여워. 볼따구가 말랑말랑 너무 귀여워.”

갑자기 한주는 한별의 볼을 주물거리고 한별은 귀찮은 듯 밀쳐냈다.

한별은 다른 세상에서 놀고 있는데 한주 혼자 애가 달아 북치고 장구 치는 격이다.

동생에 대한 섭섭함을 극극T로 규정지으며 달래보지만 동생의 극극 천진스러움에서는 어쩔수없이 무너진다.

“선생님, 제 친구가 외동인데요. 저한테 동생이 있는 건 어떤 기분이냐고 물어본 적이 있어요. 개떡 같은 기분이라고 말해줬어요. 동생이 있는 건요, 개떡 같아요.“

한주는 고작 두 살 위 형이다.

언젠가는 자폐스펙트럼 증상이 있는 동생을 이해할 날이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이해라는 장치 없이도 한주의 동생 사랑은 이미 충분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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