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 좋은 토란국

by 유연한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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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은 토란국과 정성스럽게 찐 채소, 소금을 솔솔 뿌려 부쳐낸 색이 너무 예쁜 자색마와 애호박, 그리고 언제나 맛있는 굴소스로 볶은 청경채다. 특히 오늘은 영양가가 많고 위가 안 좋은 사람에게 좋은 토란으로 토란국을 끓였다. 토란에 들어있는 '뮤신'이라는 성분이 위산으로 인한 위 손상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보통 버섯과 들깨를 넣어 함께 끓인다고 하는데 오늘은 마크로비오틱식으로 맑게 표고 다시물에 무와 버섯을 넣고 푹 끓여내니 이만으로도 깊은 맛을 낸다.


그러나 제목과 달리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안타깝게도 토란이 아니라 찐 채소 접시에 담긴 브로콜리다.


우리 나이의 사람들은 브로콜리를 먹을 때면 항상 '브로콜리 너마저'를 생각한다. 심지어 그들의 음악을 모르는 사람들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브로콜리는 '브로콜리 너마저'다. 내가 좋아하는 '싱어게인' 프로그램이 얼마 전 시즌 2를 방송하기 시작했다. 음악에 진심인 사람들의 열정을 그대로 그려내는 프로그램이라서 좋기도 하고, 이제는 우리와 같이 나이 들어가고 있는 듯한 승기와 규현의 장난기 가득한 쿵짝 캐미가 퍽이나 재미있어 즐겨본다. 그런데 이번 시즌 첫회 때 '브로콜리 너마저' 덕원의 얼굴이 보여 깜짝 놀랐다. 설마 하고 다시 보니 정말 그 덕원이었다. TV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얼굴이라 놀라기도 했고, TV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로 결심한 덕원의 마음에 더욱 놀랐다. 정글 같은 음악계에서 자신은 강한 발톱이나 강한 이빨이 없어, 마치 초식동물처럼 정글의 주변부를 배회하고만 있다는 덕원의 말이 참 쓰렸다. 그런데 TV에서 듣는 덕원의 노래는 미안하지만 너무 어색했다. 홍대의 어두컴컴한 작은 공연장에서, 때로는 화창한 날 길거리 공연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지친 퇴근길을 조용히 위로해줬던 음악이었는데, 화려한 조명이 비추고 있는 큰 무대에서 수많은 카메라 앞에 선 덕원의 모습을 보고 있는 내가 너무 어색했다. 그래도 어떤 마음으로 TV 프로그램에 출연하겠다고 마음먹었는지 알 것 같기에 그의 말 한마디, 노래 한 소절 한 소절을 떨리는 마음으로 함께 했다.


그 모습을 계속 떠올리며 오늘 나의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아마 그 방송을 본 '브로콜리 너마저'를 아는 사람들 모두 언제까지나 나만 알고 싶고, 나만 듣고 싶은 노래로 그의 음악을 남겨두었는데 우리들의 그 마음 때문에 그는 힘들었구나 생각했을 것이다. 모두가 소비하는 대중가요가 되지 말고 나만 위로해주는 음악으로 남아달라고 욕심부린 것이 그를 힘들게 했구나 생각했을 것이다. 글도 내가 쓰면 누군가는 읽어줘야 하고, 음식도 내가 만들면 누군가는 먹어줘야 하는 것처럼, 음악도 내가 하면 누군가는 들어줘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계속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법이다.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을 들으며 위로받았던 내가 그를 위로해 주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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