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의 세상(The World After COVID)
코로나 이후의 세상에 대해 모든 사람들이 어느 정도 적응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우리는 서서히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는 느낌을 기다릴 뿐이다. 일상으로의 복귀가 상당 부분 진행된 것 같지만 사실 특이한 형태로의 일상에 복귀하는 것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사람들은 전에 없던 마스크를 쓰고 수시로 열을 재며 살아가고 방역 패스가 있어야 식당에서 밥을 먹을 수 있다. 예전처럼 다시 워터파크에도 놀러 가지만 워터 마스크를 쓰고 들어간다. 이것이 진정 일상으로의 복귀인가. 단지 현상적인 것이 아니라 앞으로 세상은 많이 바뀔 것이다.
모두가 궁금해하는 코로나 이후의 세상을 저명한 학자와 저널리스트 등 일반 사람들보다 앞선 생각으로 세상의 흐름을 읽어오고 있는 사람들의 입으로 말하는 책 '코로나 이후의 세상(The World After COVID)'은 우리가 방향을 잃고 헤매고 있는 지금 필요한 책인 것 같다. 이 책의 발행 시점은 2021년 9월이지만 이 책의 내용은 2020년 4월에서 6월 사이에 진행된 멍크 다이얼로그의 대담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이 발생한지 불과 3개월 만에 코로나 이후의 세상을 정확하게 예측한 이들의 식견에 감탄하게 된다. '티핑 포인트', '아웃라이어'의 저자로 유명한 말콤 글래드웰을 비롯한 '금융의 지배'를 쓴 영국의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 국제통화기금에서 15년간 일한 경제 칼럼니스트 모하메드 엘 에리언, 미국 정치문화 평론가이자 '인간의 품격'의 저자 데이비드 브룩스, 미국의 정치학자 이안 브레머, IT 저널리스트 카라 스위셔 등 이들이 냉철하게 바라본 코로나 이후의 세상을 읽어보자.
위기는 기존 흐름을 끝내거나 뒤바꿔놓기보다는 기존 흐름을 재촉하는 경향이 크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코로나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10년이 걸릴 변화를 18개월로 단축시키고 있다. 특히 불평등 심화, 일자리 문제 등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코로나로 글로벌 공급망이 파괴되어 모든 것이 끝장나고 소비와 생산이 동시에 무너졌다. 대응능력이 없는 개발도상국은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일의 파급효과를 감당하는 중이다. 미국, 독일, 캐나다 같은 부유한 나라는 비용을 차용해서라도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책임질 수 있는 정부가 있고 시장의 신뢰를 얻을 만한 실적이 있어서 쉽게 돈을 빌릴 수 있다.
그러나 비곤한 국가에는 선택권이 없다. 의료 시스템이 취약하고 정부가 그다지 유능하지도 않고, 신뢰할 수도 없으며 현금 보유량 또한 많지 않은데 더 늘릴 수도 없다.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이남,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인도 등의 나라는 불평등이 더욱 심화될 것이다. 더 빈곤한 지역 사회에는 훨씬 더 확연하게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전쟁은 국가를 만들고, 국가는 전쟁을 만든다"
찰스 틸리의 이 말은 전쟁을 일으키면 국가의 힘은 커진다는 의미. 국가 비상사태가 발생해서 정부가 권한을 부여받을 때가 '전쟁'이라고 본다면 이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정확히 그런 현상이 맞다. 정부의 민간 부문 개입이 엄청나게 커지고 있다. 우연찮게 우리는 큰 정부를 마주하게 되었다.
미국은 자국 경제 및 세계 경제의 회복을 위해 국가가 할 수 있는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최대한 펼쳤다. 특히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방향 설정이 이전에는 결코 경험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우리 일상생활에 영향을 행사하고 있다. 문제는 중앙은행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필요에 떠밀려서, 효율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책임을 짊어지게 된 상황이다. 2008년 금융위기 때의 폭락이 글로벌 경제에 가져온 충격이 주기적인 게 아니라 구조적이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했는데 그렇지 못해 이제는 잘못된 성장 모델이 되어버렸다. 현재 글로벌 경제는 금융에 의존하는 성장모델에 깊이 빠져있지만 인력과 자본의 생산성에 의존하는 성장모델로 되돌아가야만 했다.
투자자는 연준을 믿을 수 있는 상황에 줄곧 놓여 있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의 안정을 위해 중앙은행이 계속해서 대응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중앙은행은 경제에 직접 관여할 방법이 없다. 이자율을 낮춰서 돈을 빌려 주택담보 대출을 갚게 하거나 소비지출을 장려하는 일뿐이다. 근본적으로는 지속 가능한 전략이 아니다. 연준의 정책은 금융자산 소유자와 대기업에만 유리할 수밖에 없다. 부의 불평등에 기회의 불평등마저 악화시키게 되었다. 연준이 시장을 안정시키고 변동성을 줄인다는 명목으로 개입했고 투자자는 연준을 믿을 수 있는 상황에 줄곧 놓여 있었다. 현재와 미래의 경제 펀더멘탈과는 완전히 분리된 채 금융시장은 상승 국면으로 돌아섰다. 투자자들은 어떻게 하더라도 잃을 게 없는 상황이라고 믿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글로벌화된 세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보의 속도가 지금보다 빠른 적은 없을 만큼 정보가 너무나 빠르게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 사람들은 이제 연준의 통화정책을 아주 명확히 이해하고 있다.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이 키운 유동성은 소비를 촉진시켜 기업의 투자와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식과 부동산으로 자금이 몰리게 할 뿐이었다.
기업은 효율성을 강조하던 방향에서 회복탄력성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노선을 변경할 것이다.
지금까지 기업들은 매끄러운 글로벌 공급망이 있었기에 창고에 물건을 저장할 필요가 없었다. 소비자가 있는 그곳의 노동력이 더 싸기 때문에 세계 곳곳에 생산시설을 만들면 됐다. 그러나 이제 1) 현지의 노동비용 상승했을 뿐만 아니라 2) 인공지능과 딥러닝 기술 개발로 실제로 기업의 노동 수요도 줄어들었다. 3) 특히 글로벌 공장이었던 중국 기업은 더 강해지고 경쟁력이 더 커지게 되었고, 4) 미중 무역전쟁으로 미국과 중국의 상호 연결은 더욱 약화될 것이다.
글로벌화를 지향하는 사람들은 엄청난 효율성과 경제성장을 창출했다고 생각했지만 성장에 따르는 리스크가 더 커졌고 전 세계적으로 성장 수준이 낮아질 것이다. 기업들은 이제 비용 대비 효과가 좋은 글로벌 공급망을 덜 강조하고 본사에 더 가까운 곳으로 생산 시설을 되돌려 놓는 리쇼어링(reshoring) 정책과 탈글로벌화(deglobalization)로 방향이 달라질 것이다. 글로벌화 이전의 공급망 재가동에 심혈을 기울이며 사업의 글로벌화 방식에 있어 더욱 신중하게 될 것이다. 미국에서 경제를 정상 상태로 되돌릴 수 있는가는 방글라데시, 인도,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이남에서 공급망이 제대로 작동되는지에 좌우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이미 분열되어 있었다.
9/11 이후 사람들이 종교의식에 더 많이 참석하게 되었고, 자원봉사 활동에 더 많이 나섰고, 헌혈도 더 많이 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9개월 정도만 나타났고 그 이후 모든 것은 평상시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이번 팬데믹이 오래 지속될 영향력이 있는 중대한 사건이 될 것이다. 이는 단순히 비극이고 재난이어서가 아니라 팬데믹이 우리를 강타했던 때에 우리는 이미 사회적 위기가 진행 중이었고 이미 분열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두 종류의 위기가 한 번에 발생한 것이다. 이미 사람들은 불안정 상태였다. 소득이 들쑥날쑥하고 고용상태는 불확실했으며 건강마저 위험에 처했다.
지난 60년 동안 우리 사회는 사회 상위층 20% 사람들에게 내달릴 여지를 마련해주고 교육기회를 제공하고 자기 일을 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을 내어주는 것을 잘 해왔다. 하위 80%의 사람들은 높은 위험에 직면해 있으면서도 받는 보상은 낮은 수준이다. 상위 20% 사람들은 그저 경쟁했을 뿐이다. 그들은 자기 자녀들에게 유리한 고지를 대물림했다. 그러면서 고학력층을 위한 안전한 피난처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제 하위 80%의 사람들에게 보상을 높이고 위험을 낮추도록 사회를 바꾸는 일이 미래를 위해 논의되어야 한다. 우리가 신봉하고 있는 능력주의를 재고해야 한다. 우리는 막다른 길에 와 있다.
불평등이 엄청나게 큰 문제가 될 것이다.
긱 경제의 등장으로 음식 배달인력, 제품 발송업무를 하는 아마존 창고 직원 모두가 필수인력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들 필수인력은 희생인력이다. '부유한 코로나, 가난한 코로나'로 사람들은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아주 다른 경험을 하고 있다. 부유한 사람들은 끊임없이 부유해지는데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모두 품위 있고 안전한 일자리와 좋은 의료보험, 다음 월급을 어디서 받을 수 있을지 걱정하는 일이 없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부채, 실업, 경기침체 이런 것들이 실질적으로 인간성을 겨냥하는 본성과 관련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공지능과 로봇공학이 사람들을 돕는 일에 더욱 집중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에 어마어마한 격차가 나지 않는, 모두에게 더 공정한 시스템이 되어야 한다.
디지털화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디지털화될 것이다.
구글은 검색을, 페이스북은 소셜미디어를, 아마존은 상거래를 소유하고 있다. 팬데믹에서 이런 기업들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이 더욱 강조되었다. 앞으로 여러 가지 면에서 디지털화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디지털화될 것이다. 자동화와 비대면이 이미 일어나고 있던 트렌드를 재촉할 것이다. 위험하고 반복적인 업무는 로봇이 대체하며 인간이 할 수 있는 다른 일자리를 만들어낼 것이다. 문제는 인간이 창의적이고, 인간만이 할 수 있고, 고차원적인 감각을 사로잡는 일자리를 혁신을 통해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군주와 농노가 있는 역사를 다시 겪게 될 것이다. 정보 경제에서 역량이 뛰어난 일부 사람들이 있고 나머지 다른 사람들은 뛰어난 일부 밑에서 일하게 되는 것이다.
세계는 지금 중국 중심의 세계가 아니다.
미국 중심에서 벗어난 세계일 뿐이다.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다른 어느 나라가 지배하는 것도 아니다. 불명확하고, 성장이 둔화되고, 혼란스럽고, 방향을 잃은 세상이다. 그러나 미국은 결국 최고의 승자가 될 것이다. 1) 국제통화로서 달러가 갖는 위상, 2) 세계 최대 에너지 수출국이자 3) 식량 수출국이며, 4) 대부분의 빅테크 기업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기술이 발전할수록 중국식 시스템 기반과 미국식 시스템 기반의 두 개의 서로 다른 테크 시스템에 따른 테크놀로지 냉전시대에 돌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중국에 엄청난 부채를 지고 있지만 아마 그 부채를 갚을 여력은 없는 저개발국가들 모두를 한편으로 삼는다. 글로벌화로 중국은 거대한 소비자층을 얻었지만 거대한 문제도 함께 떠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미국식 시스템은 안보 우산의 이유로 또는 문화적인 이유로 대부분의 서구 국가에서 도입될 것이다. 각 시스템은 어떤 제품을 사용자들이 보게 될지를 걸러내는 필터뿐 아니라 누가 사용자들을 감시하고 데이터를 수집해서 수익화하는지까지도 영향을 미친다.
기후위기에 대처하기에는 지금이 적기일 수 있다.
이제 보다 위험을 회피하는 방향으로 절약하는 사회가 될 것이며 기후위기에 대처하기에는 지금이 적기일 수 있다. 어쩌면 이 상황은 우리가 기후와 지구를 대했던 방식에 대해 자연이 복수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교황이 말했다. 인간의 개발 그리고 계속된 개발의 성격과 속도, 난폭한 방식은 이 세상에서 동물들이 자유롭게 살아갈 장소를 점점 더 많이 빼앗았다. 이제 지구 온난화에 귀 기울여야 하며 생명을 지키는 방법을 이야기해야 한다.
세상의 복잡성과 변화가 일어나는 속도에 대처하는 회복탄력성을 갖추어야 한다.
자동화, 테크놀로지, 디지털 경제가 가속화될 것이나 이제 속도를 어느 정도 늦출 필요가 있다. 초고속 알고리즘 기반 상거래가 필요한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함께 어울려 살고 싶어 한다. 함께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고, 애도하고, 축하하고 싶어 한다. 우리는 이런 일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독창적인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왜냐하면 삶은 계속되기 때문에. 중요한 건 세상이 달라질 것이라는 점, 그리고 그런 달라진 세상에서 길을 찾는 방법을 편견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을 이해해야 하는 일이다. 변화가 오고 있다. 이 변화는 괴로운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변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에게 회복탄력성이 더욱 강조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