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BS Chef : 맛의 세계에서 매일을 보내는 사람
‘장래희망을 선택해야 하는 나이에 지금처럼 다양한 매체들을 활용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생각했다가 ‘어쩌면 지금이라도 이렇게 공부할 수 있는 게 어디야.’라고 다시 생각을 고쳐본다. 유튜브 채널 중에는 다양한 직업군을 가진 사람들을 직접 인터뷰하는 채널이 많다. 대기업 마케터부터 증권사 애널리스트, 스타트업 대표 등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업부터 보이스피싱 총책을 검거한 형사, 여름철이 임박하면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바쁜 에어컨 청소업체 대표, 투기와 사기가 판치는 보이차 세계의 전문가, 배달전문 중국집 사장님, 해외 중고차 판매 딜러, 여성 쿠팡맨 등 우리가 쉽게 만날 수 없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TV 프로그램 ‘유퀴즈’에도 이와 비슷하게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는 다양한 직업군이 등장하며 ‘월급쟁이 회사원’ 밖에 모르는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자극을 준다.
직업을 더 깊이 있게 바라보기 JOBS 시리즈
그런 의미에서 매거진 B Jobs 시리즈는 새로운 책이 나올 때마다 매거진 B가 그랬듯이 더 깊이 있게 그 직업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책이라 일부러 찾아서 읽는다. 특히 인터뷰 형식의 글이 그 사람이 가진 직업의 이야기와 더불어 내면의 이야기를 끌어내는 데 적합한 방법인 것 같다. 그리고 책을 통해 그들의 직업적인 그리고 삶에 대한 신념과 철학을 읽을 수 있어서 더욱 흥미롭다. Jobs 시리즈는 국내외를 막론한 인터뷰 대상자 선정이 정말 탁월한데,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인터뷰이의 책을 더 찾아서 읽거나 관련된 콘텐츠를 찾아서 더 공부하게 된다. 현재까지 에디터, 셰프, 건축가, 소설가까지 4편의 책이 발행됐는데 앞으로 나올 시리즈도 무척 기대된다. 앞으로 셰프가 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요리’와 ‘음식’을 다루는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어서인지 최근에 읽은 ‘셰프’ 편은 나에게 더욱 의미 있게 다가왔다.
셰프 : 맛의 세계에서 매일을 보내는 사람
셰프가 최근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인간은 생존을 위해 매일 먹고 마시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직업만큼 직업과 삶이 밀착되어 있는 직업이 또 있을까. 식문화의 양상이 다양해지고 환경과 건강의 이슈로 음식이 더욱 중요해지면서 셰프의 역할이 더욱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셰프의 반복되는 노동이 크리에이티브한 일을 할 수 있게 만든다.
매일 반복하는 일을 더 체계화하려고 노력하고, 미세한 변수를 제어하려 힘쓰는 것이 크리에이티브의 본질이기 때문에 셰프의 매일 반복되는 노동과 같은 요리가 크리에이티브한 일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셰프는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식재료 수급부터 음식물 쓰레기가 나가는 마지막 절차까지 프로세스를 통제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고 좋은 셰프일수록 그 통제의 범위가 더 넓다. 반복되는 루틴을 받아들이고 그 루틴 자체를 계기로 삼을 수 있는 인내심과 끈기, 그다음은 전체를 볼 수 있는 시야를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셰프가 아니라도 우리의 직업과 삶에 적용해 볼 수 있는 방식이다.
좋은 리더는 좋은 소통가
미식의 도시로 떠오른 코펜하겐의 아틀리에 셉템버(Atelier September)의 셰프 프레데리크 빌레 브라헤(Frederik Bille Brahe)는 '좋은 리더는 좋은 소통가'라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구성원을 연결하는 공공의 목적이 무엇인지 그들과 확실히 공유하는 것이 중요한데, 직원 각자가 자신이 하는 일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일일이 알려줄 필요가 없고 셰프 스스로 견고한 정체성을 갖는 것이 자율적인 분위기의 근무 환경을 만드는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Be nice yourself!
그는 삶에 있어서든 일에 있어서든 모든 것이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찾아오는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현대인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타인에게 노출되는 빈도가 훨씬 높아진 시대에 살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완벽주의적이고, 성과주의적이다. 그러나 기회를 잡는다는 말은 자신이 실수할 수 있도록 허락한다는 의미이자 인생을 변화시킬 준비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Be nice yourself! 스스로에게 친절하게 잘 대해준다면 당신이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기회가 찾아올 것이다.
스스로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도 세상을 바꾸는 일
뉴욕에서 주목받고 있는 박정현 셰프는 '작은 변화가 모여 큰 변화를 만들고 그러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나 스스로가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도 세상을 바꾸는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지만, 그는 인생에서는 특별한 원칙이 없이 흘러가는 대로 살아간다고 한다. 흘러가듯 살아가다 보면 어느새 흥미 있는 일이 생기고 거기에 집중하며 그것을 따라가게 될 수밖에 없다. 궁금하거나 알고 싶은 분야가 없어진다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얼마나 허전하겠는가. 흥미 있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항상 찾으려고 노력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내면에 항상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나의 내면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수행 역시 반복을 통해 가능하다.
한국 사찰음식의 대가 정관스님은 '수행은 자신의 생각을 관리하는 방법이며 모든 것은 집중을 통해 가능하다.'라고 말한다. 수행 역시 반복을 통해 가능하다. 여러 사람의 에너지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참선의 목적이라며 사람들과 나눌 음식을 만들며 수행하고 있다는 정관스님은 음식을 만들 때 모든 마음과 에너지를 집중해 그 안에 담아낸다고 한다. 내가 행복하고 편안해야만 그 마음이 음식에 그대로 담길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음식이란 나를 지키고 좋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음식이며 오랫동안 행복한 마음을 지니게 해 준다. 우리도 자신의 일을 통해 수행을 한다고 생각하며 그 과정에서 나의 내면의 소리 역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온전히 상대를 이해해야 상대를 헤아릴 수 있다.
누군가가 나를 잘 알지 못하는데 나를 제대로 표현해줄 수 있을까? 요리 역시 식재료의 본질을 알아야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생명체는 자신만의 시간과 호흡이 있다. 재료의 본질을 알면 맛과 영양을 최고로 끌어낼 수 있게 되는데 자연을 이해하는 것, 이로써 나 자신도 수행을 완성해 나가며 결국 나의 본질을 표현하고 행복을 남에게 전하는 과정이 요리라고 정관스님은 말한다.
무엇보다 먹는 일이 즐거워야 한다.
요리는 결승점을 향해 내달리는 스포츠가 아니고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무엇이다.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외로운 만큼 타인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지만 코로나 때문에 이마저도 쉽지 않게 돼버린 세상. 관계를 중심으로 한 식문화가 정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앞으로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하는 셰프들. 위대한 생태학자나 환경운동가도 공통적으로 좋은 음식을 이야기한다며, 음식과 환경문제 사이의 연결고리를 고민하며, 로컬 식재료를 고집하고, 채식 위주의 메뉴를 고민하는 이들이 진정 위대한 사회운동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먹는 일이 즐거워야 하기 때문에 앞으로 자신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이들이 참 존경스럽다.
세상의 창의적인 일이란 전문지식이 아닌 직업적 사고를 제대로 이해하고 갖추는 데서 시작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이 책을 통해 셰프라는 직업을 다시 보게 되었고, 음식과 환경의 연결고리를 찾고자 고민하는 나에게도 길잡이가 되어 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