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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신동, 새것과 낡지 않은 것

by 유연한프로젝트

당신은 ‘새것’과 ‘낡지 않은 것’ 둘 중 어떤 것을 더 선호하는가. 물론 요즘처럼 인공지능과 가상현실과 같은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시대에 가전제품이나 자동차처럼 신기술이 집약된 물건은 언제나 새것이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티지 가구와 빈티지 그릇, 심지어 빈티지 옷까지 ‘빈티지’가 꾸준히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분명 있을 것이다.


낡은 것을 새것처럼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동묘 벼룩시장에 가면 유난히 깨끗한 상점 하나가 눈에 띈다. 이곳은 여느 상점과 똑같이 누군가 ‘쓰던 그릇’을 팔고 있지만 깨끗이 닦아서 비슷한 디자인과 색상에 맞춰 진열을 해 놓아 지저분하게 먼지 쌓인 그릇을 아슬아슬하게 쌓아 놓고 파는 다른 가게들과 비교가 되어 더 눈에 띈다. 하지만 이 상점의 그릇들도 가져올 때는 모두 엄청 지저분한 상태였다고 한다. 낡은 것을 새것처럼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법. 그러나 이는 무조건 새것을 선호하는 것보다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것이 사장님의 생각이다.


시간과 철학은 카피되지 않는다


동인천지역에서 도시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개항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이창길 대표는 개항로를 살리기 위해 새로운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노포와 협업을 통해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유명하다. 오랫동안 동인천 지역에서 장사를 해오며 세월의 흐름 속에서 온갖 역경을 겪었을, 그래서 쉽지만은 않았을 노포와 콜라보하는 이유를 이창길 대표는 '시간과 철학은 카피가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낡았더라도 시간이 묻어있고 그 안에 좋은 것이 있다면 그 어떤 것도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창길 대표는 ‘새것이 제일 좋은 것의 시대는 지났다.'라고 말한다. 그의 프로젝트 방향도 개항기 시대의 근대문화유산이 남아있는 동인천 지역의 특성을 지켜내면서 현재의 트렌드와 가치를 담아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낙산성곽이 지켜낸 풍경


이제는 서울에서 보기 드문 풍경인 낙산성곽 아래에 옹기종기 작은 집들이 남아있는 창신동 골목길을 얼마 전 다녀왔다. 낙산성곽을 따라 이미 카페들이 들어찬 골목도 있었지만 아직 마을 주민들이 거주하는 공간이 그대로 남아있는 지역이 있었다. 운 좋게 이곳에 작은 집을 작업실로 임대해서 사용하고 있는 지인의 초대를 받아 찾아갔는데 그 집 작은 창에서 보이는 뷰가 정말 예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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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성곽과 멀리 북한산 인수봉까지 한눈에 보이는 풍경에 할 말을 잃었다. 서울에서 이렇게 건물에 가려지지 않은 뻥 뚫린 하늘과 멋진 산새를 볼 수 있는 곳이 또 어디 있는가. 아마도 이 풍경은 낙산성곽이 있었기에 지켜질 수 있던 풍경이었겠지.


낡아 보여도 버려야 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 창신동 골목길


신기하게도 이런 멋진 풍경을 보고 사는 주민들이라 그런지 좁은 골목길 하나하나가 모두 깨끗했다. 오래된 집과 골목길이 새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낡아 보이지 않았다. 아니 낡아 보여도 버려야 할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공들여 화단을 가꾸고 매일매일 골목길의 쓰레기를 치우는 이곳 주민들의 노력이 마을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드는 것 같았다. 벌써 오래된 집들을 리모델링해 카페거리로 만든 골목보다 이 마을이 훨씬 더 깨끗하고 좋아 보였다. 이 마을도 언젠가는 다 허물어지고 재개발이 되어 새 집이 들어서겠지만 이 풍경은 쉽게 지켜지지 못할 것을 안다. 새것과 낡지 않은 것. 우리가 더 가치를 두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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