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요리를 좋아하고 많은 음식을 만들며 요리실력이 점차 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물만큼은 아직도 나에겐 너무 어려운 음식이다. 콩나물을 살짝만 삶아 아삭한 식감을 살리는 것도 쉽지 않고, 건고사리처럼 딱딱한 나물을 충분히 잘 불려 부드럽게 삶아내는 것도 쉽지 않다. 그래서 정월대보름을 맞이해 나물반찬 세트를 좋은 재료로 만드시는 분께 구매했다. 이런 것이 현명한 소비 아닌가.
좋아하는 나물반찬을 한 상 차려놓고 청국장만 끓여내 맛있는 정월대보름을 보냈다. 정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상적인 채식밥상이다. 매일매일 이렇게 먹으라면 먹을 수 있을 만큼.
외국인들도 이런 슴슴한 나물반찬을 의외로 좋아한다. 특히 말린 채소를 다시 삶아 만드는 나물은 특유의 식감이 재미있고, 간이 세지 않아 재료가 가진 그대로의 맛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섬유질과 무기질이 가득한 건강한 채소요리기 때문인 것 같다. 아마 서양식 샐러드에 비해 재료 손질부터 데치고 무치는 전 과정이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지 알면 깜짝 놀라겠지만, 그래도 외국인 친구들은 이 '한국식 샐러드'를 많이들 좋아했다.
봄이 오면 새순을 뜯어 나물로 먹겠지만 이 엄동설한의 계절에 말려서 저장해 놓은 묵은 나물을 먹으며 겨우내 부족했던 식이섬유와 무기질을 섭취해 새로운 기운을 얻고 새해를 맞이하는 정월대보름의 풍습이 새삼 지혜롭다. 지혜롭고 건강하게 올 한 해를 보내자고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