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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애플이 그려진 156만 원짜리 셔츠

by 유연한프로젝트

우리는 고등학교 시절 밤 12시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하며 열심히 공부해 대학을 갔고, 만들 수 있는 최대한의 토익 점수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다방면의 스펙을 쌓기 위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대학생활을 했다. 어떻게든 해외 경험을 하기 위해 어렵게 어학연수를 가거나 해외 탐방의 기회가 있는 각종 공모전에 도전하며 회사에서 원하는 인재상에 맞추려 노력했고, 대학을 졸업하고 어렵게 들어간 회사에서도 퇴근 후 끊임없는 자기 계발을 하며 20, 30대를 보냈다. 그리고 어느덧 40대가 되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혹은 아직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고, 그렇지만 여전히 출퇴근을 반복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아니, 살아내고 있다. 역세권 아파트를 아직 사지 못했고, 뒤늦게 뛰어든 주식은 좀처럼 마이너스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회사만 다녀서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월급을 받는 것에만 익숙해져 있는 우리는 '좋은 사업 아이템만 생기면 작게라도 사업을 시작하면 좋겠어', '요즘 MZ세대에게 유행하는 물건만 딱 찾아서 스마트 스토어로 팔면 되잖아', 혹은 '제로웨이스트 생활 방법을 인스타그램에 꾸준히 올려 이제라도 인플루언서가 되어 볼까'라고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 회사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수만 가지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출근길, '매달 일정하게 들어오는 월급이 최고의 재테크 수단'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다시 마음을 다잡고 회사로 출근한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이렇게 회사만 다녀서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그러나 알면서도 어찌할 수 없는, 아니 도저히 찾아낼 길 없는 답답한 마음을 안고 살아간다.


이런 현실을 요즘 젊은 친구들은 이미 알고 있는 것 같다


이들은 아무리 열심히 저축해도 집을 살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았기 때문에 집을 사는 대신 값진 물건을 사는 것으로 방향을 바꿨다. 명품의 주요 구매 연령대가 20, 30대로 내려간 지 이미 오래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베인 앤 컴퍼니가 '2025년에 명품을 사는 사람 중 10명 중 7명은 40세 이하일 것'이라는 전망을 발표했다. 이들의 재정능력이 갑자기 좋아져서라기 보다는 현재의 삶을 위한 만족도를 높이는 차원에서 명품을 구매한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특히 한국인에게 제1자산으로 꼽는 것이 부동산이었으나 지속적인 집값 상승으로 인해 젊은 세대가 '내 집 마련'을 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해졌기 때문에 결국 이들은 제1자산을 포기하고 실질적으로 취할 수 있는 고가의 물건을 구매하면서 현재를 즐긴다는 것이다. 외신들도 한국의 집값이 급등하면서 현재를 즐기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젊은 세대가 집을 포기하고 대신 명품을 산다고 분석하고 있다.


MZ세대에게 명품은 투자의 대상이다


물론 명품은 '리셀'이 가능하기 때문에 자신의 소득 수준을 고려한 소비라기보다는 제품 자체의 희소성, 판매할 수 있는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는 '재테크'의 관점으로 보는 시각도 있을 수 있다. 실제로 MZ세대는 명품을 투자의 대상으로 보고 가상화폐나 NFT와 같이 투자수익을 올릴 수 있는 대상으로 보고 있다. 스니커즈 리셀 플랫폼으로 시작한 네이버 자회사 '크림'은 서비스 출시 1년 9개월 만에 회원 수 190만 명, 누적 거래액 8천억 원을 넘기며 국내의 리셀 플랫폼 시장의 무한한 확대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156만 원짜리 구찌 셔츠


얼마 전 우연히 본 패션 잡지는 여전히 명품 브랜드로 도배되어 있었다. 그러나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명품 브랜드 모델이 근사한 외국 영화배우가 아닌 우리나라 여자 아이돌이라는 것이다. 이는 명품 브랜드가 이제 쉽게 가질 수 없는 선망의 대상이 아니라 트렌디한 패션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트렌드에 민감한 세대들에게 명품은 사치스러운 물건이 아니라 필수적인 패션 아이템이 되어 버렸다. 한 장에 156만 원이나 하는 구찌 셔츠 하나쯤은 일상복처럼 입는 것이 트렌드가 되어 버린 것이다. 백화점들도 이미 발 빠르게 2030 명품족들을 위한 마케팅을 펼치고 있는데, 현대백화점은 2030 VIP를 위한 전용 멤버십과 라운지를 만들었고, 롯데백화점에는 2030 MVG(Most Valuable Guest, 초우량고객)를 위한 리무진 의전 서비스가 등장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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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인생의 필요충분조건이 아니기 때문에 단지 돈을 벌기 위해 인생의 전부를 걸지 말라'는 어른들의 조언이 과연 이들에게 와닿는 말일까. '명품은 오늘이 가장 싸다'라는 말이 더 와닿는 말이 아닐까.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현실은 명품이 오늘이 가장 싸더라도 살 수 없다고 말한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발표한 '청년 빈곤 실태와 자립 안전망 체계 구축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만 19∼34세 청년 중 41.4%가 연간 총소득이 2천만 원도 되지 않는다. 이들이 받는 월급으로는 한 장에 156만 원이나 하는 셔츠를 살 수는 없다. 이들 10명 중 4명은 주관적으로 빈곤하다고 여기며 이들 중 자신이 빈곤을 탈출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28.5%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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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재테크 방법이라고 불리는 '리셀'은 글로벌 유동성이 낳은 투자 광풍이 마케팅 영역에도 등장한 것은 아닌지, 희소성의 가치를 극대화시킨 명품 브랜드의 마케팅 전략에 나의 월급을 쥐어짜며 소비하면서도 계속 더 비싼 것을 갈망하는 어리석은 소비자로 전락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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