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한 장면처럼 비현실적인 빛깔의 석양을 바라보며 장난스럽게 사진을 찍다가도, 살면서 이렇게 멋지게 해가 지는 순간을 눈앞에서 마주할 수 있는 날이 얼마나 있겠냐며 대화를 멈추고 지는 해를 함께 바라본다. 대전에 새로 생긴 40층짜리 호텔은 석양을 감상하기에 딱 좋은 뷰를 갖고 있었다.
스무 살 학보사 기자로 만나 매일 밤을 새우며 꼬박 일 년 반을 붙어있던 친구들. 서른이 되던 해에 호텔에서 연말 파티를 하며 이제 어른스럽게 매년 이렇게 연말을 함께 보내자던 약속은 12년 후에나, 그것도 찌는듯한 더위가 시작된 한여름 6월에 지켜졌다.
친구 셋이 이렇게 같이 만나기가 어려운 일인가 싶지만, 어렵다면 정말 어려운 일이다. 각자의 삶은 우리의 전공(환경공학, 고고미술사학, 정치외교학) 만큼이나 너무도 달라졌고, 현재의 고민들 또한 우리가 사는 곳(경북 구미, 강원도 양양, 그리고 서울) 만큼이나 멀어져 있다.
올해 첫째를 초등학교에 보내며 학부모가 된 친구, 코로나 시국에 어렵게 결혼해 이제 시험관을 시작한 친구, 그리고 아직도 손에 잡히지 않는 무언가를 쫓아 꿈을 찾고 있는 친구. 아마 지금 우리가 전혀 모르는 사이였다면 만나 지지 않을 다른 세상의 사람들 같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다시 한자리에서 같이 만나기까지 12년이 걸린 것일 수도, 그래서 만나는 장소도 아무런 연고도 없는 셋의 중간쯤 대전이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기억나지 않는 과거의 일들을 추억하려고 애쓰기보다는 지금의 고민들을 온 마음을 다해 들어주고 앞으로의 날들을 응원하는 사이. 그래서 더 좋은 친구들. 이제 우리는 적어도 오십이 되기 전에 오늘 나눠가진 손수건을 손목에 묶고 다시 만나자는 촌스러운 약속을 남기고 각자의 삶으로 돌아갔다.
이 글을 쓰며 아직도 내 나이라고 믿기지 않는 마흔두 살에 더 믿기지 않는 오십 살을 이야기하지 말고, 좀 더 우리가 함께 했던 엉성했지만 즐거웠던 스무 살 때 이야기를 나눌 걸 그랬나 안타까워한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우리 나이가 서글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