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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브랜딩 워크북

by 유연한프로젝트

'국제홍보'라는 애매한 나의 석사 전공은 5학기 동안 학문을 탐구하기보다는 각종 기관의 인턴생활과 교수님 연구 프로젝트 참여로 실무를 더 많이 익혔던 시간이었음에도 2006년 당시 기업들의 마케팅 화두가 되고 있던 CSR을 주제로 힘겹게 논문을 쓰며 마무리되었다. 그 '사회공헌 활동'이 지금은 'ESG 경영'으로 좀 더 세련되게 탈바꿈한 것 같다는 애매한 전공자의 사견. 그래도 요즘 눈에 불을 켜고 환경 이슈를 살펴보고 있는 나는 ESG 경영이 단순히 추운 겨울 전 직원이 조끼를 입고 연탄봉사를 하는 수준에서는 벗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전히 CSR 개념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던 사람들이 ESG 경영 전략을 짜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 그래서 더욱 궁금했던 한지인 작가님의 'ESG 브랜딩 워크북'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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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첫 장부터 내가 한참 동안 답을 구하지 못하고 있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과연 '가치 추구'와 '돈벌이'의 양립이 가능한가?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돈과 의미를 동시에 추구하는 일은 어렵다는 결론에 다다를 즈음 다행스럽게도 가치 추구와 돈벌이가 양립할 수 있는 방향을 이 책에서 제시한다.


개인의 욕망과 자유를 동력으로 삼은 자본주의는 쉽게 지구를 장악했다. 우리나라 역시 자본주의가 무르익기 시작하던 시기, 우리네 아버지가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기회가 도처에 있던 시절, 노력하면 고스란히 보답으로 돌아오던 호시절'. 적금 금리가 무려 20%이던 시기라서 월급을 꼬박꼬박 모으면 10년 안에 대출 없이 서울에 아파트를 살 수 있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소수 개인의 욕망과 자유를 채워주는 데 열중해 결국 위태위태한 자본주의의 모습을 보고 있다. 모두가 나도 그 소수에 속할 수 있다는 환상 속에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가지만 애초에 실현 불가능한 경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러나 회의적일 필요는 없다. 이미 다양한 관점으로 이 문제를 바라보고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재생 경제학(전환 경제학), 대안 자본주의, 대안경제 시스템, 도넛 경제학, 순환 경제학 등은 정통 경제학이 더 나은 삶을 만드는 데 기여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생겨났다. 특히 순환 경제학은 '취하고, 만들고, 버리는' 현 자본주의의 선형 구조와 비교해 다시 쓰고(reuse), 나누고(sharing), 고치고(repair), 재단장하고(refurbishment), 재생산하고(remanufacturing), 재활용하는(recycling) 것들을 구체적인 요소로 가지고 있다. 즉 폐기물을 가능한 최소화한다는 원칙을 기반으로 한 번 쓴 자원을 어떻게든 '계속 쓰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경제 시스템이다. 삶의 전환기를 맞이한 사람들이 앞으로 자신의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이러 다양한 관점은 우리 모두가 깊이 있게 생각해 봐야 할 방향이다.


아직 나는 사업을 준비하고 있지 않지만, 아니 사업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되지 않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먼 미래의 내가 만들 브랜드에 대한 생각이 자연스럽게 깊어진다. 그 브랜드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될 수도 있고 나 자신이 될 수도 있다. 나를 브랜딩 한다는 것은 단순히 유명 인플루언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강점을 잘 알고, '나다움'을 찾아내는 것이다. 지금의 상태에 집중하고 브랜드를 시작하려는 의도(intention)가 무엇인지 밝히는 것이다. 좋은 브랜드는 밸류체인의 전 과정을 그들의 브랜드 의도에 맞게 얼마나 집요하게 구축하느냐에 달려있다. 구축된 밸류체인을 계속해서 최적의 상태로 운영해가는 것을 우리는 지속가능성이라 부른다.


작가는 의도를 공유하고 연결하는 방법으로 콘텐츠 에디터처럼 글과 말을 통해 세상의 관심사를 짜임새 있게 보기 좋은 방식으로 엮어내는 재발견, 재구성, 재배치의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편집'이라는 행위를 통해 새로운 '연결'을 만들고, 다시 그 연결을 통해 그들만의 '관점'을 드러낸다. 그러기를 반복하면서 혁신과 창의성을 만들어낸다고 말이다. 내 브랜드는 연결돼 있는가? 연결하고 있는가? 맞잡은 손을 통해 연결된 브랜드들의 의도가 양쪽으로 막힘없이 흐르고 있는가? 이 연결은 어떤 메시지를 세상에 전달하고 있는가? 연결의 의미를 증폭시키기 위한 강점을 가지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온라인 쇼핑으로 기존의 유통망이 파괴되는 틈을 이용해 성장하고 있는 여러 브랜드들은 결국 전통적인 유통 브랜드들이 만들고 사용하며 발전시켜온 시스템을 그대로 취한 것이다.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해 중간자로서의 수익을 창출하는 방식은 동일하다. 그러나 이들은 기존 아이템의 구성을 바꾸거나 연결 지점을 재배치하면서 역할의 오리지널리티를 만들며 차별점을 만든 것이다. 앞으로 우리 사회는 수많은 '연결'들을 기반으로 성장할 것이다. 투명하게 의도를 드러내고 제대로 연결된 브랜드들이 취할 이윤과 성장은 사회적 가치 상승과도 긴밀하게 엮여 있다.


잘되는 일의 프로세스는 단순화와 복잡화를 반복한다. 펼치고, 접고, 정리하고, 늘어놓고 다듬는 과정을 계속하며 모호한 언어는 명확하게, 드넓은 꿈은 구체적으로 만든다. 당장 생각하는 것들, 공부하는 것들이 정리가 되지 않고 복잡하기만 하다면 그냥 그것들을 넓게 펼쳐놓고 바라보는 것도 방법이다. 넓게 펼쳐진 지식들은 그 연결점을 찾아 서로 엮어지고 정리된다. 그것들을 다듬고 명확하게 만들면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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