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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연한밥상 Mar 17. 2022

이야기가 많은 사람이 되자

어렸을 적 나의 꿈은 이야기꾼처럼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는 사람이었다. 친구들 중 한 두 명은 있는, 생동감 있고 재미있는 말투로 어제저녁 TV에서 본 드라마 내용을 기가 막히게 그대로 전달하는 사람. 그런데 나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말로 전달하기도 전에 이미 그 상황을 혼자 상상하면서 웃음이 터져버리는 것이다. 내 이야기에 내가 웃음이 터지는 상황이라니. 웃는 건지, 말을 하는 건지 모를 나의 이야기가 다 끝나고 나면 친구들은 항상 재미없다고, 뭐가 웃긴 거냐고 묻곤했다. 그런 상황이 몇 번 이어지고 나니 나는 내가 이야기꾼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이제는 그 이야기를 SNS를 통해 전달하는 세상이다 보니 말보다 이미지로, 때로는 글로, 이제는 영상으로 이야기를 잘 전달하는 사람이 이야기꾼이 되기에 유리해졌다. 화려한 패션지에서 오랫동안 일한 김지수 기자가 이어령 선생의 지혜를 인터뷰 형식으로 남긴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서 김지수 기자가 살아온 독백과도 같은 기자로서 삶의 이야기가 잠깐 나온다. 


"나는 오랫동안 화려한 패션지에서 일했다. 내 27년 기자 경력 중 21년이 패션지에서의 삶이었다. 아름답게 반짝이는 의상, 색색깔로 늘어선 화장품, 파티, 유명 인사, 과장되게 친절한 홍보 전문가들의 웃음... 속에 둘러 싸인 채로, 내 삶엔 '시늉'이 많았다. 완벽하게 꾸며진 세트에서 비현실적인 가격의 옷을 입고 미소를 짓는 서구의 모델들... 사진작가와 촬영 스태프는 마치 그것이 우리의 삶인 것처럼 진심을 다해 그것을 '베꼈다'. 내 삶으로 누리지 못하면서, 그 물에 한 발을 담그고 있다는 것만으로 안도했던 시절. 가난과 결핍을 들키지 않으려고 어린 시절부터 시늉이 체질화된 삶을 살던 나는, 그 시늉이 삶을 완전히 집어삼키기 직전에, 버블 낀 청담동을 떠나 잉크 냄새 진동하는 광화문에 정착했다. 내 인생의 거품경제 시절은 지나갔지만, 한동안 나의 환경을 지배했던 '럭셔리'가 무엇인지, 스승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럭셔리한 삶. 돈과 성공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요즘, 내 삶으로 누리지 못하면서 SNS에 보이는 호화스러운 삶을 보며 동경하는 많은 사람들처럼 나도 럭셔리한 물건을 많이 소유한 삶이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했기에 이어령 선생의 대답이 무척 궁금해졌다.   


"나는 소유로 럭셔리를 판단하지 않아. 가장 부유한 삶은 이야기가 있는 삶이라네. '스토리텔링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가 그 사람의 럭셔리지. 똑같은 시간은 살아도 이야깃거리가 없는 사람은 산 게 아니야. 스토리텔링이 럭셔리한 인생을 만들어. 우리는 겉으로 번쩍거리는 걸 럭셔리하다고 착각하지만, 내면의 빛은 그렇게 번쩍거리지 않아."


그렇다. 화려한 언변을 가진 이야기꾼이 아니라 그 이야기꾼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진짜 이야기를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이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남이 정해 놓은 신념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닌, 남들의 욕망을 쫓아가는 것이 아닌, 내가 가진 고유의 흐름과 이야기를 따라가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나만의 이야기가 완성되는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 지금밖에 할 수 없는 일을 하자. 이야기가 많은 사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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