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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연한밥상 May 02. 2022

뭐든지 적당한 게 좋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보고 즐길 수 있는 것이 너무 풍족해져 어쩌면 더 지루해졌는지 모른다. 리모컨을 들고 100개가 넘는 TV 채널을 무한히 돌려본 적, 넷플릭스 추천 콘텐츠를 아무리 돌려봐도 볼만한 것이 없어 그냥 TV를 꺼버린 적이 있었을 것이다.


출처 : news.nate.com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정주행 하며 나도 모르게 벌써 20년 전이 되어버린 나의 고등학교 시절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 라희도와 나는 동갑이다. 몇 장밖에 없던 CD와 동네 책방에서 빌린 만화책, 학교 도서관에서 빌린 소설책 몇 권이 전부였지만 그것들이 있어 매일 밤이 즐거웠던 그 시절. 들리지도 않는 Backstreet Boys의 영어노래 가사를 소리 나는 대로 받아 적어 따라서 흥얼거리고, '풀하우스'와 '언플러그드 보이'를 빌려와 반납 날짜가 될 때까지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읽고, 친구와 교환일기를 쓰고도 할 말이 남아 또 편지를 쓰던 밤. 지금은 남편이 가입해 놓은 온갖 OTT 계정과 YouTube 프리미엄 계정이 있지만 보고 싶은 영화도 듣고 싶은 음악도 없다. 가끔 음악을 듣고 싶을 땐 주구장창 옛날 음악만 듣는다.


콘텐츠를 소비한다는 관점에서 그 시절과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지만 만화도, 영화도, 음악도 모든 콘텐츠가 디지털화되어 있는 지금 시대의 콘텐츠 경험은 '눈'과 '귀'로만 하는 한정적인 경험이다. 만화책과 비디오테이프 혹은 DVD 그리고 CD 등 물성이 있는 매개체를 통한 콘텐츠의 경험은 몸이 닿는 '촉각'이 더해진다. 손으로 재질을 느끼고 그 무게를 느낄 수 있다. 이것은 종이책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와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책 한 권에 담긴 이야기, CD 한 장에 담긴 열곡 남짓의 음악이 한정적이어서 더 소중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면 나의 소중한 것은 정말 작은 것이었다. 많이 가졌다고 무조건 즐겁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도리어 너무 많아서 나의 영혼이 담길 곳은 남아있지 않을 수 있다. 많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뭐든지 적당한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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