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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호박과 표고버섯만 넣은 채식만두

by 유연한프로젝트

요즘 채식을 주로 하면서 사찰음식에 대한 관심이 계속 커졌다. 넷플릭스 '셰프의 테이블'을 보고 정관스님의 수업을 들으러 백양사에라도 내려가고 싶어졌다. 그러나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지 안국동에는 조계종에서 운영하는 '한국사찰음식문화체험관'이 자리하고 있었고, 수개월에 걸친 사찰음식 전문가 과정 말고도 매달 다양한 주제로 열리는 단기 사찰음식 강좌들이 많이 운영되고 있었다. 사찰음식이 '모든 생명에게 감사하고 온 세상의 화평을 기원하는 음식'답게 수업료도 다른 쿠킹클래스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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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첫 시간. 우선 수업에 참석하신 수강생 분들의 연령대가 높다. 이렇다는 얘기는 모두가 거의 수준급 요리 실력을 갖추었다는 뜻. 지견스님의 시연이 끝나자마자 4명이 1조로 움직이는 실습 테이블은 흡사 대형 레스토랑 주방 못지않게 빠르게 돌아간다. 이렇게 정신없는 요리실습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첫 시간에 배운 애호박과 표고버섯만 들어간 채식만두는 정말 감동이었다. 만두에 흔히 들어가는 두부도, 숙주도 넣지 않는다. 무엇보다 김치만두라도 만두에는 당연히 고기가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나의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고기를 넣지 않아도 참기름에 잘 볶은 표고버섯만으로도 감칠맛이 나고, 최대한 얇게 채를 썰어 볶아내 뭉그러지지 않은 애호박의 단맛도 너무 잘 어우러진다.


어릴 때 겨울이면 온 가족이 함께 만두를 빚던 기억이 있다. 할머니가 만두피를 만들기 위한 반죽을 시작하시면, 엄마가 김치를 잘게 썰고 아빠가 그 김치의 수분을 제거하기 위해 양파망에 넣어 김치 국물을 짜낸다. 이어서 밑간해 둔 돼지고기를 볶아내고, 부추를 다지고, 숙주를 삶아내고 또 다지고, 당면을 삶아 또 다지기를 반복해 겨우 만두소 준비가 끝나면 온 식구가 둘러앉아 만두를 빚기 시작한다. 만두 빚기가 중반에 다다르면 커다란 찜통에 계속해서 만두를 쪄낸다. 쪄낸 만두는 채반에 바로 올려 식혀야하는데 엄마는 항상 만두를 꺼내기 직전에 채반을 찾아오라고 하신다. 커다란 채반은 자주 쓰는 물건이 아니기에 온 집안을 한참 뒤져야 나왔다. 말그대로 온 집안이 난리 나던 만두 빚기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만두 빚기를 할 때마다 한 번도 소복이 만두를 접시에 예쁘게 담아 먹었던 기억은 없다. 만두를 찜통에서 꺼내 채반에 올려 한 김 날아가면 바로바로 우리들 입속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가끔 이렇게 식구들끼리 만들어먹던 만두가 생각났다. 조미료를 넣지 않았기에 일반 만두집에서 만드는 만두와는 다른 밍숭밍숭한 맛이지만 그 슴슴한 맛이 그리울 때가 있다. 신기하게도 어릴 때 먹었던 음식은 정말 평생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전쟁같은 만두빚기를 남편과 단 둘이 해낼 자신이 없어서 아직 시도해보지 못했었다. 그러나 스님보다 더 빠른 같은 조 아주머니들과 함께 만두를 1시간만에 빚어내고 나니(그 1시간 안에 3가지 음식을 같이 만들었다!) 왠지 이제 나도 혼자서 만두를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날 바로 집에와서 재택중인 남편과 만두를 만들었는데, 통밀가루로 만든 만두피가 좀 쫄깃하지 않은 것 빼고는 괜찮았다. 정말 신기하게 맛있는 채식만두. 자주 해먹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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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류 생산량은 인구 증가량을 뛰어넘었다. 가축 사육과 곡물사료의 아찔한 발전 덕분에 육류 450g의 가격은 지금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더 저렴하다. 하지만 이는 전 세계의 기아 문제를 해결하지도, 육류 섭취의 민주화를 이루어내지도 못했다. 우리는 너무 많은 육류를 섭취한다. 심지어 엉뚱한 부위의 섭취 비율이 심각할 정도로 높다.” (댄 바버, 제3의 식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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