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책 리뷰
벚꽃비가 내리던 4월 초 어느 날, 평소 좋은 책을 많이 추천해 주시는 지인 분이 처음에 재미가 없더라도 그냥 묵묵히 끝까지 읽어보라고 추천해 주신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Why Fish Don't Exist)'. 평소 이분의 추천 책 리스트를 자주 참고해서 읽는지라 그 자리에서 바로 이 책을 주문했다. 그런데 다음날 받아본 책은 내가 영 읽기 힘들어하는 긴 영어 이름을 가진 인물이 여럿 등장하고, 미국 작가 특유의 늘어지는 스토리텔링 형태의 책. 한 두장 넘기다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기를 반복, 결국 덮어두었다. 그렇게 몇 주가 흘렀지만 계속 이 책이 신경 쓰였다. 아니 궁금했다. 정말 한 번만 더 시도해 보자 하고 다시 마음을 잡고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하루 반 만에 놀라움의 금치 못하며 책장을 덮었다.
‘팩트풀니스’를 읽었을 때처럼 내가 잘못 알고 있던, 잘못 보고 있던 관념의 세계가 또 한 번 깨지는 순간이었다. 처음에는 혼돈의 세상에서 질서를 만들려는 생물학자의 태도에 고개를 끄덕였다. 왜냐하면 혼란스러운 상황이 닥치면 나도 항상 질서 있게 상황을 정리하려는 습관이 있기 때문에 그의 방식이 옳다고 믿었다. ‘분류학자’라는 명칭까지도 마음에 들었다.
정의, 향수, 무한, 사랑, 죄 같은 추상적인 개념들이 누군가가 그것들의 이름을 만들어낼 때 비로소 존재하기 시작한다고 한다. 이름으로 불리는 순간 개념은 현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실재’가 된다. 아이디어를 ‘상상의 영역’에서 ‘세상의 영역’으로 끌어오는 운송 수단인 ‘이름’ 자체는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만 마리의 물고기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종을 분류한,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던 한 생물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노고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잘못된 논거로 만들어진 ‘우생학’을 설파한 열광적인 우생학자였다. 하지만 동물은 인간이 스스로 우월하다고 가정하는 거의 모든 기준에서 인간보다 더 우수할 수 있다고 한다. 까마귀는 사람보다 기억력이 좋고, 침팬지는 인간보다 패턴 인식 능력이 뛰어나며, 개미는 부상당한 동료를 구출한다고! 지구에 사는 모든 생물을 실제로 검토해볼 때, 인간을 꼭대기에 두는 단 하나의 계층구조를 그려내기 위해서는 상당히 무리해야 했다고 한다. 인간은 가장 큰 뇌를 갖고 있지도 않고 기억력이 가장 좋은 것도 아니다. 인간은 가장 빠르지도, 가장 힘이 세지도, 번식력이 가장 좋지도 않다. 도구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라는 놀라운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자연에서 생물의 지위를 매기는 단 하나의 방법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하나의 계층구조에 매달리는 것은 더 큰 그림을, 자연의 ‘생명 전체 조직’의 복잡다단한 진실을 놓치는 일이다. 좋은 과학이 할 일은 우리가 자연에 ‘편리하게’ 그어놓은 선들 너머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 우리가 응시하는 모든 생물에게는 우리는 결코 이해하지 못할 복잡성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실제로도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분류했던 ‘어류’는 후대 분류학자들에 의해 견고한 진화적 범주가 아님이 밝혀졌다. 수많은 미묘한 차이를 가지고 있는 바닷속 생물들을 억지로 ‘어류’라는 하나의 단어 아래로 몰아넣었다는 이야기다. 수천 년 동안 산꼭대기에서 사는 모든 생물을 진화적으로 동일한 ‘산어류’라는 집단에 속한다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살았다고 가정해보자. 산에 사는 어류, 그러니까 산어류에는 산염소와 산두꺼비, 산독수리, 그리고 산사람이 포함된다. 그러면 이 모든 생물이 서로 너무나 다르지만, 우연히도 그 고도에서 살아남게 해주는 비슷한 외피를 갖도록 진화해왔다고 가정한다면, 이렇게 ‘서식지’와 ‘피부 유형’이 같다 보니 이들은 동일한 종류의 생물처럼 보인다. 모두 ‘산어류’인 것이다. 우리가 그들이 모두 한 종류라고 착각하는 것과 같은 논리다. 그것은 마치 '빨간 점이 있는 모든 동물이 한 범주'에 속한다는 말이거나 '시끄러운 모든 포유동물은 한 범주'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어류’라는 단어는 어떤 의미에서 보면 경멸적인 단어라고 작가는 말한다. 우리가 그 복잡성을 감추기 위해, 계속 속 편히 살기 위해, 우리가 실제보다 그들과 훨씬 더 멀다고 느끼기 위해 사용하는 단어라고. 인간 중심의 사고, 인간의 편의만을 위한 일들을 이제는 멈추고 생물다양성의 불균형을 해결해야만 기후위기로 지구가 망가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한다. 보지 못한 것, 알면서도 보지 않으려고 하던 것들을 이제는 더 세심하게 살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