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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연한밥상 Aug 09. 2022

결국 소비를 줄여야 한다.

'노 임팩트 맨(No Impact Man)' 북리뷰

코로나 이후 많은 사람들이 예전처럼 해외여행을 떠나지 못하면서 그에 대한 반사작용으로 최근 2년간 여행 유튜버가 급부상했다. 분명 여행이 좋아 재미 삼아 시작했을 텐데 이렇게 백만 유튜버가 되어 광고까지 찍을 줄은 그들도 몰랐을 것이다. 나도 몇몇 여행 유튜브 채널을 즐겨보며 앞으로 가고 싶은 나라에 대한 정보를 얻거나, 가보지 못할 나라에 대한 감상을 즐기곤 한다. 그러다 최근 인도 여행을 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을 보며 인도가 곧 세계 1위 중국의 인구를 넘어설 것이라는 말을 실감했다. 무질서와 혼돈의 도시, 넘쳐나는 인구의 나라 인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출생아 수가 현저히 줄어들고 급격하게 노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많은 나라들에 비하면 당분간 인도의 성장 여지가 큰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영상을 보는 내내 나는 그 많은 인도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파는 짜이나 망고주스를 일회용 컵에 마시고 있는 것에 더 눈길이 갔다. 14억의 인구가 매일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은 앞으로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뉴욕 한복판에서 환경에 영향을 주지 않고 1년을 살아보기로 결심한 어느 작가의 이야기, '노 임팩트 맨(No Impact Man).' 일회용품 쓰레기를 만들지 않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도시에서 사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이야기일까 라는 의문으로 시작하며 이 책을 읽기 시작한다. 그리고 무려 2010년에 이런 대단한 실험을 펼친 사람이 있었다는 것에 다시 한번 놀란다.


도시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근사한 직업을 갖고 생활하기에 넉넉한 돈을 번다. 하지만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들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도 못하고 대부분 자기와 추구하는 바가 다른 회사에서 일을 한다. 그 때문에 의미 없는 삶을 사는 것처럼 공허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노 임팩트 맨'의 시도가 더욱 여러 가지 의미를 갖게 되는 것 같다. 환경을 생각하면 많은 것을 포기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는 소비주의에서 한 걸음 물러서는 순간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가 소비하는 자원 중에서 삶을 더 행복하게 만드는 데 쓰이는 부분은 얼마만큼이고, 월급의 노예로 묶어 놓는 데 쓰이는 부분은 얼마만큼일까?


결국 소비를 줄이자.


더 이상 환경을 지키는 것이 선택이 아닌 시대. 기존의 가치관과 생활방식, 오래된 습관을 고수할 것인지, 유효한 새로운 습관과 방식을 채택할 것인지의 문제일 뿐이다. 환경을 지키는 일은 말을 하는 것은 쉽지만 실천은 말보다 훨씬 어렵다. 온갖 정보를 접할수록 혼란스럽다. 친환경적인 생활방식은 스스로 터득해야 하고 그마저도 알찬 정보는 없고 기업의 PR만 넘쳐나는 세상이다. 친환경적으로 사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믿을 만한 로드맵이 없다. 기업들은 제품에 '친환경' 딱지를 붙이느라 여념이 없는 '그린워싱' 시대이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다른 제품'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적은 제품'을 선택하는 것. '다른 자원'을 쓰는 게 아니라 '적은 자원'을 쓰는 것이 관건이다. 결국 소비를 줄이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모든 자원을 소비하는 방향으로 돌진하는 대형 트럭 같다. 우리는 소비주의에서 벗어나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자꾸 그 한복판으로 돌아오고, 예전처럼 이걸 고치려고 저걸 사고, 살을 빼려고 뭘 먹고, 보존하려고 소비하는 최면상태에서 허우적거린다.


휴대전화나 차를 바꾸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기분이 좋아지지만 그 쾌감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는 사실. 그래서 쾌락의 쳇바퀴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바라던 걸 손에 넣으면 욕구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다음 대상으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험 밑바탕에 욕구가 자리 잡고 있고 하루의 변덕스러운 욕망을 충족시켜도 욕구가 사라지지 않는다.


모두가 나는 이걸 가지고 싶다, 저걸 가지고 싶다 하는데, 이 '나'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없다. 세상 모든 것을 가지고 싶어 하는 '나'는 어떤 존재일까? 어디에서 왔을까? 어디로 갈까? 사는 이유가 뭘까? 죽는 이유가 뭘까?를 한 번쯤은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우리는 욕구를 충족시켜야 행복해진다고 믿는다. 우리의 욕구는 끝이 없고, 경제시스템은 이 끝없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하나의 거대한 기계라고 한다. 문제는 우리가 사는 이 지구의 자원이 무한하지 않다는 것이다. 욕구를 채우느라 지구를 파괴해놓고 그런 다음에야 우리가 사는 이유가 그게 아니었다는 걸 깨달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것이야말로 하던 일을 멈추고 고민할 만한 문제가 아닐까?


행복한 사람은 새로운 물건을 계속해서 구입할 필요가 없을 만큼 기본적으로 심리상태가 밝다. 또한 인생에 만족하는 사람들은 인간관계가 돈독하고, 자기 일에 보람을 느끼고, 스스로 가장 소질이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연마하고, 좀 더 원대한 목적의식이 있다. 소유에 대한 집착을 줄이면 시간적 여유가 생겨 좀 더 풍요롭고 자원을 덜 쓰는 인생이라는 보상을 받는다. 우리 할머니 때만 해도 소비를 미덕이라 생각하지 않고 절약하는 습관을 가르쳤다. 자원을 소중하게 여기고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을 당연하게 여기면 안 된다.


생태계에 남기는 족적을 줄이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 도시인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서 살고 있다. 농산물과 소비재의 유통체계는 도시인들의 '욕구'를 채우는 데 주안점을 두고 날로 발달한다. 새벽 배송, 로켓 배송이라는 도시인들에게 편리한 인터넷 쇼핑의 결과로 쏟아지는 쓰레기는 아무도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작가는 도시 거주자들이 생태계에 남기는 족적을 줄이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각자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도시인들이 모두 시골에 땅을 사서 전원생활을 하기보다 대도시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찾아보는 것이 훨씬 논리에 맞는 일이다.


도시인들의 바쁜 생활 패턴은 가족과 함께 모여 저녁식사를 하더라도 플라스틱 통에 담긴 음식을 허겁지겁 먹어치우기에 급급한 시간으로 만들었다. 포장해서 집에서 간편하게 먹을 수 음식이 많아져 생활이 편해지고 가족과 함께 어울리는 시간이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결국 일할 시간이 많아지는 것뿐이다. 과도한 쓰레기를 만들며 과소비를 하는 이유가 좀 더 간편해지기 위해, '욕구'를 처리하기 위해서다. 어쩌다가 우리 자신의 건강을 챙기는 것이 '처리'해야 하는 하찮은 일이 되었나. 그 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을까. 돈을 버는 기계로 전락해 인생을 '처리'하는 것이 존재 이유로 보이는 편의용품을 더 많이 사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듯하다. 너무 정신없이 사느라 엉뚱한 곳으로 걸어가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내 손을 거쳐가는 물건들을 소중하게 다루면 내 발밑으로 지나가는 지금 이 순간도 소중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편리하지도 않은 편의용품을 사느라 우리 별의 자원을 닥치는 대로 소모하고 있다.


우리는 언제부터 내가 어디 있느냐보다 어디로 가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을까? 언제부터 무얼 하든 가장 중요한 것은 끝맺음이라고 믿기 시작했을까? 옛날에는 휴대용 컵이 없으니 대신 그저 카페에 앉아 있었다. 휴대전화가 없으니 휴식 시간에는 그저 쉬었다. 그 사이에 하품을 하며 스트레스를 더는 달콤한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휴대폰은 우리에게서 하품의 시간을 빼앗아갔다. 나날의 분주함을 차단하는 이런 시간들이 잘려나갔다. 이제는 피크타임이 지나면 다시 피크타임이 이어진다. 효율성. 그게 우리에게 좋은 일일까? 그게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까?


하늘을 찌르는 우울증 환자의 수는 두 가지 복합적인 요인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성향과 그 성향을 자극하는 생활환경이 서로 맞물린 결과라는 것이다. 그 방아쇠 역할을 하는 것 중 하나가 스트레스라고 한다. 우리 사회의 압도적인 스트레스가 우울증 환자의 수에 지대하게 공헌하고 있다. 긍정심리학자들이 말하는 행복한 사람들은 가진 것에 고마워하고 지난 경험을 음미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그들은 나중으로 넘어가려고 '현재'를 후딱 흘려보내지 않는다. 자신과 가족을 챙기는 일, 지금 이 순간이 재미있는 순간이라고 말한다.


비닐봉지는 전 세계에서 가장 흔한 소비재이고 가장 널리 퍼진 일회용품이다


비닐봉지를 소각장에서 태우면 대기가 오염되고, 매립지에 묻으면 몇 백 년 동안 고약한 화학물질이 흘러나온다. 대부분의 일회용품을 만드는 플라스틱의 내구성은 막강하다. 몇 백 년 동안 썩지 않는다. 그 결과 바다 1.6제곱킬로미터당 4만 6천 조각의 플라스틱이 떠다니고 있다고 유엔환경계획에서 발표했다. 우리가 버린 플라스틱이 결국 미세한 조각으로 분해되더라도 우리가 먹는 생선에서 다시 검출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먹이사슬 제일 밑바닥에서 시작된 것은 반드시 꼭대기에서 끝을 맺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단단한 플라스틱 용품을 만들 때 사용되는 혼합물인 비스페놀 A의 경우 호르몬 체계를 어지럽혀 몇몇 암의 발병률을 높이고, 불임을 유발하고, 과다행동장애와 같은 아동질환의 원인을 제공한다.


주변에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디에서 장을 보고, 포장이 안 된 어떤 물품을 살지 연구하는 것이 큰 과제이다. 우리 사회 시스템이 지속 가능하게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사회의 조류를 거슬러 헤엄쳐야 한다. 우리 사회는 원하는 것을 취한 뒤 쓰레기와 오염과 온실가스를 남기지 않는 게 시스템상 불가능한 구조다. 산업화되면서 우리의 물질 경제는 생산자에서 소비자를 거쳐 다시 생산자로 돌아가는 순환 구조가 아니라 생산자에서 소비자를 거쳐 매립지와 소각장으로 넘어가는 한 방향 구조가 되었다. 기업은 소비자가 원하는 것만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2000년에는 옥수수, 콩, 밀, 건초 이 네 가지 작물을 생산하는 데 미국 농경지의 85%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들은 가공식품으로 만들어지거나 패스트푸드점의 햄버거에 쓰이는 쇠고기의 사료로 쓰이고, 그 결과 사회적인 비만을 낳았다. 유기농 식품 시장이 성장하자 기업형 농장들은 조화롭고 친환경적이고 건전한 농업철학이 아니라 단순히 더 많은 대가를 지불할 용의가 있는 소비자들을 유인하는 식품 생산방식의 관점에서 유기농법에 관심을 보였다. 지속 가능한 식생활을 위한 로컬푸드 운동은 자기 집에서 트럭으로 왕래할 수 있는 거리에서 생산된 제철음식만 먹는다. 좀 더 만족스럽게 사는 방법과 우리 지구를 좀 더 아끼는 방법을 찾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로컬푸드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가까이에 있는 수많은 농가를 통해 식료품 생산을 다양화해야 획일화된 식료품 공급시스템 때문에 창궐하는 질병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최소한 국내에서 생산된 농산물로 만든 식재료를 소비하는 것이 도시에 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실천은 그 결과가 아니라 그 자체로 올바른 것


내가 이 작가의 말들에 더욱 공감했던 이유는 이 작가처럼 대도시에 살고 있는 나 역시 지속 가능한 생활을 위해 많은 고민을 하고 갈등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흥이 안나는 일을 하며 꾸역꾸역 살고 있었고, 5분 쓰고 버릴 물건을 위해 시간과 돈을 쓰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편리함과 맞바꾼 나의 많은 것들을 되돌리기에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즐기고 음미하려면 하던 일을 멈추고 바라보아야 한다. 누구나 석양은 아름답다고 말하지만 비가 오는 날을 제외하고 매일 그 시간 감상할 수 있는 석양을 여유롭게 바라보는 이는 많지 않다. 대도시에서 살면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찾아보는 것. 최소한 나 자신은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노력했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실천은 그 결과가 아니라 그 자체로 올바른 것이기 때문에 실천의 결과를 목적으로 삼지 말고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아가 세상에 기여하려는 노력의 시작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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