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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연한밥상 Sep 05. 2022

버릴 것 없이 '채우장'

보틀팩토리 채우장 서포터즈 참여 후기

채우장 시작 시간을 10여분 앞둔 시각.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뚫고 새벽부터 판매할 채소를, 음식을, 빵을, 디저트를 준비해서 오신 채우장 참여자분들은 모두 준비가 끝났는데, 손님이 아무도 없다. 전날 밤 무거운 테이블을 세팅하며 기운을 다 뺀 다운님과 나는 큰일 났다며, 오늘 채우장은 망했다며 걱정을 시작했다. 나도 다운님도 살짝 걱정인형 스타일. 그러나 슬금슬금 장을 보러 오는데 이미 장을 본 듯한 배부른 장바구니를 어깨에 맨 사람들이 빈 용기를 바리바리 싸들고 찾아오기 시작했다. 다행히 큰비도 내리지 않아 보틀라운지 뒷마당까지 채우장이 열리는 내내 북적거렸다. 



그동안 채우장엔 나도 장만 보러 오던 동네 주민이었지만 내가 애정 하는 동네가게가 함께 참여했으면 좋겠고, 이런 좋은 프로젝트를 함께 만들고 싶어서 처음으로 채우장 서포터스로 짧은 기간 함께 준비했다. 채우장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아이템과 평소 애용하는 동네 가게들을 섭외하고, 채우장 전날 테이블을 세팅하며 없는 힘도 썼다.  


최근 <남의집>에서 ‘사부작사부작 빗자루 만들기’를 기획하며 로컬 큐레이터 이혜란 님과 했던 사전 인터뷰 중에 내가 모시 빗자루 워크숍을 하는 이유가 보틀팩토리에서 ‘설거지 원정대’에 참여하며 시작된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설거지 원정대 실험 참여 이후로 나는 열매 수세미를 말려서 만든 수세미와 설거지 비누를 쭉 사용해오고 있다. 채식 위주로 식습관을 바꾼 탓도 있지만 한 달에 한 번 꼴로 버리던 스펀지 수세미와 강력한 액체 주방세제가 나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습관은 정말 무섭기 때문에 직접 경험을 해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뉴스 기사에서 아무리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접해도 편리함만을 생각한 소비패턴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사람들은 몇 번 쓰면 망가져서 버려질 싸구려 플라스틱 제품을 알고도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사람들에게 모시 빗자루를 손으로 직접 만들며 물건의 소중함을 느끼고 앞으로 좀 더 신중한 소비를 하고, 내가 쓰고 버리는 물건이 자연에 덜 해가 되는 방법을 고민하는 습관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지난겨울 스몰바치 스튜디오 강은경 선생님께 ‘식경험 디자인’ 수업을 들으며 Closing the Loop - 순환구조, 순환적인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나는 모시 빗자루로 그 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최근 빗자루 만들기 워크숍에 참석하셨던 두 분이 가족과 지인분들, 그리고 회사 동료까지 여러분을 모시고 어제 채우장에 장을 보러 오셨다. 나와 비슷한 나이의 직장인들이 가질 수밖에 없는 고민들의 방향을 구체화하고 계신 최정민 님, 그리고 나이 따위 무엇! 이냐며 세상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고 계신 박인옥 선생님. 그리고 생각해보니 채우장 판매자로 참여하신 석은진 선생님도 빗자루로 맺어진 인연으로 보틀라운지 근처로 공방을 옮기신 케이스였다. 


내가 만들어가고 있는 순환의 고리의 시작에는 보틀팩토리가 있었다. 매력적인 보틀팩토리 공간에서 워크숍을 진행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인데, 보틀팩토리의 이런 플랫폼 역할이 더욱 확대되길 기대한다. 채우장에서 같은 동네에 가까이 살고 있지만 서로를 몰랐던 판매자들끼리 인사를 나누고 서로가 만든 작품과도 같은 음식을 칭찬해주는 모습들이 참 좋았다. 새로운 콜라보가 일어날 것 같은 기대가 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틈틈이 모아두었던 종이봉투, 양파망을 가져가서 사람들과 잘 나눠 썼다. 한번 쓰고 버려질 운명의 일회용 제품이 다시 생명을 얻은 것 같아서 또 한 번 기분이 좋았다. 






https://www.instagram.com/chaewoo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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