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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연한밥상 Nov 11. 2022

유연한 프로젝트

사람들은 경험이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살아오면서 했던 모든 경험은 아무리 사소할지라도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자양분이 된다고. 나 역시 그렇게 믿고 있다.  


10년이 넘게 나는 돈을 쓰는 사업만 했다. 반대로 말하면 나는 돈을 버는 프로젝트를 해본 적이 없다. 얼마 전 만난 내 동기와 우리는 돈을 ‘기깔나게’ 잘 써서 ‘뻑적지근’ 한 행사를 하는 일은 잘할 수 있는 사람들이지만 단 돈 1원 한 푼 벌기는 어려운 사람들이라고 씁쓸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회사에서 많게는 1년에 10억짜리 사업을 3개씩 굴리던 때가 있었으니, 내 수중에는 쥐어도 보지 못한 어마어마한 돈을 나는 프로젝트를 운영하며 펑펑 써왔던 사람이다. 이번 종자관 프로젝트가 그나마 수월했던 것은 ‘돈을 쓰는’ 사업이었기 때문이리라. 비록 천만 원 남짓의 적은 사업 예산이었지만 기획 단계가 마무리되고 실제 운영을 위한 예산 집행 단계로 넘어가자 사전 품의를 올리고 지출 품의를 올리는 일을 아무 거리낌 없이 기계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품의 올리는 일을 몸이 기억하고 있다니 스스로 감탄스러울 지경이었다.


프로젝트가 끝나고 사업 결과보고서 작성과 정산 역시 너무나 쉽게 끝났다. 농업박람회 전체 25억 예산에서 그중 천만 원이 뭐 그리 대수랴. 박람회 전체 운영 대행사에서도 천만 원짜리 주제관 하나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을 터였다. 나에게 주어진 한글문서 3장을 채우는 결과보고서는 말 그대로 식은 죽 먹기 었다.


10년 넘게 회사를 다녔어도 내가 할 줄 아는 것은 고작 한글문서를 끝내주게 편집하는 능력밖에 없다고 친구들에게 하소연했었다. 그러나 경험해보지 않은 누군가에게는 막막했을 ‘행정업무’가 나에게는 오랜 시간 자연스럽게 훈련된 너무나 쉬운 일이었던 것이다.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던 지난 시간들이 새삼 쓸모 있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하게 되면서 경험의 중요성을 또 한 번 느꼈다.    


지난 6월 나는 남몰래 조용히 사업자를 냈다. 이제 나는 손익을 계산하며 돈을 버는 일도 해야 한다. 아직 ‘돈을 버는’ 분야에는 전혀 경험이 없어 너무나 낯선일이지만 언젠가는 이것도 경험이 쌓이다 보면 ‘이 일은 껌이지~!’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일 자체는 부지런히 쉬지 않고 감각을 키워야 하는 일이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많은 것이 쌓여 있어야 한다. 콘텐츠를 기획하고, 에디팅 하고 나아가 제품을 브랜딩 하고, 언젠가는 디자인하는 사람이 되고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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