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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연한밥상 Nov 24. 2022

강남에는 제로웨이스트숍이 없다?

나는 생활 속에서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제로웨이스트 라이프'를 지향한다.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대에 무분별한 소비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쓰레기가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을 더욱 오염시키고 있다는 생각에 일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실천한다.


설거지 비누 사용을 시작으로 한 달에 한 개씩 버리던 스펀지 수세미를 열매 수세미로 바꾸고 샴푸와 세탁세제는 리필해서 쓴다. 동네 빵집에 갈 때는 큰 통을 들고 가거나 빵 주머니를 챙겨가서 바로 버려질 비닐을 만들지 않는다. 정기적으로 주문하던 페트병에 담긴 생수를 브리타 정수기로 바꾸고, 플라스틱에 담겨있거나 플라스틱 뚜껑이 달려 있는 우유를 사지 않는다. 가끔 밖에서 음료를 사야 할 때면 플라스틱 병에 담긴 음료가 아닌 캔이나 유리병에 담긴 음료를 산다. 그리고 방울토마토나 샐러드 채소가 담겨있던 투명한 플라스틱 통을 그냥 버리지 않고 재사용하거나 많이 모아지면 마르쉐에 나오시는 농부님들께 가져다 드린다.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나의 '제로웨이스트 라이프'는 '제로플라스틱 운동'에 가깝다. 플라스틱은 정말 편리한 재료이지만 썩지 않고 지구를 오염시킬 뿐만 아니라 미세 플라스틱이 되어 우리 몸에도 해롭다. 그리고 분해되기까지 1천 년이 걸리는 플라스틱은 결국 물과 토양을 오염시킨다. 토양, 퇴적물, 담수에 함유된 미세 플라스틱은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장기적으로는 생태계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결국 먹이사슬을 통해 인간에게 흡수된다. 나는 일상에서 쉽게 선택해왔던 물건들 대부분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물건을 소비하는 일에도 더욱 신중해졌다. 다이소에 싼값에 아무 생각 없이 샀던 물건을 한두 번 사용하고 버렸던 경험이 우리 모두에게 있을 것이다.     


소소한 실천을 이어오며 나의 제로웨이스트 라이프에 자족하던 어느 날 나는 집안에 쌓여가는 투명 플라스틱 통을 보자 답답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크기도 제각각이어서 겹쳐둘 수도 없는 플라스틱 통들이 너무 많이 쌓이다 보니 이제 한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답답함을 느낀 그 순간 그동안 감수해왔던 불편함이 차례대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설거지 비누를 쓴 이후로 어쩔 수 없이 그릇에 남는 물때 자국 때문에 행주로 물기를 닦아내느라 설거지 시간은 두배로 걸린다. 생활용품을 쟁여 놓고 살던 습관 때문에 바닥을 보이는 샴푸통을 보며 불안한 마음이 들며 '샴푸 채우러 언제 또 리필 샵에 가지.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현관문 앞에 내일이라도 당장 오는데...' 하는 생각에 이르자 결국 위태롭게 쌓여있는 플라스틱 통들에게 화가 났다. '내가 이것들을 모아서 재사용한다고 과연 무엇이 달라질까?'


이런 회의적인 마음에 더욱 기름을 부은 것은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나눈 근황 토크였다. "나는 요즘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한다면서 위험하게 스텐으로 만든 빨대를 가지고 다니며 유난 떠는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아. 그깟 빨대 하나가 과연 얼마나 지구에 영향을 끼치겠어? 탄소 배출량을 생각한다면 그 친구가 마시고 있던 커피를 수입하지 않는 게 더 맞지 않나? 근본적인 해결책 없이 아무 소용없는 일들을 하는 사람들이 솔직히 이해되지 않아. 그리고 이 많은 소위 '강남 사람'들이 제로웨이스트 실천한다는 사람은 전혀 못 봤어. 돈 많은 사람들은 점점 더 편리하고 기능도 좋은 효율적인 물건을 사서 잘 누리고 살뿐이야. 이런 세상에서 영향력 없는 사람들끼리 아무리 노력해봤자 세상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그날 이후 한동안 나는 나의 작은 노력들이 정말 쓸모없는 일은 아닐까 하는 깊은 회의감에 빠지고 말았다. 


오늘(11월 24일)부터 음식점, 카페, 패스트푸드점 등에서 일회용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를 사용할 수 없고 편의점, 면세점, 슈퍼마켓 등에서도 비닐봉투 사용이 금지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일회용컵 보증금제 시행지역 축소한 것처럼 1년간 계도기간을 또 둔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불편을 감수하겠다고 하는데 정책이 따라오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내가 빨리 회의감에서 벗어나 제로웨이스트 정체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후위기를 막을 수 있는 가장 현명한 길은
우리 각자가 지금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불편한 삶을 살겠다고 결심하고 실천에 옮기는 것"(최재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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