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가 꿈꾸는 삶

(feat. 도시 노동자)

by 유연한프로젝트

나는 서른세 살에 갑상선암으로 갑상선 전절제 수술을 받았다. 종양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아무 증상도 없었기에, 더군다나 아직 서른셋밖에 되지 않은 나이에 암 선고는 세상이 무너지는 충격이었다. 그리고는 대부분의 암 환자들처럼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시련이 생기나 하는 원망스러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암 선고의 충격이 조금 가시고 병의 원인을 생각해 보니 그 해에 회사에서 야근을 하지 않으면 처리할 수 없는 버거운 업무량을 소화하며 동시에 팀장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은 것이 원인이었다. 뒤늦게 누구를 탓하기보다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이 망가지고 잘 챙겨 먹지 않으면 건강을 해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제는 항산화와 영양 균형을 맞춘 제철 채소를 먹기 위해 한살림과 마트 유기농 코너에서 주로 장을 본다. 가공된 식품은 뒷면의 원산지와 원재료, 첨가물이 무엇인지 꼼꼼하게 살펴본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지방에 여행을 가면 꼭 시장과 로컬푸드마켓에 들러 채소를 잔뜩 사 온다. 그러다 점점 나이 든 사람들의 로망인 '푸른 자연이 있는 삶'을 꿈꾸기 시작한다. 다른 말로는 귀농, 귀촌이라고도 하는데, 20년을 시골에서 살고 20년을 도시에서 산 나는 솔직히 시골에서 살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농사를 짓는 고된 삶을 살아낼 자신이 없다. 그러면서도 창을 열면 푸른 나무가 보이고 새소리가 들리는 자연과 가까운 삶을 매일 꿈꾼다. '도시 아니면 시골', '회사 아니면 퇴사' 이 이분법적 사고에서 나는 이제 벗어날 때가 되었는데도 다른 방법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던 중 최근 뼈 때리는 글을 하나 읽었다.



"용기가 있고 어른스럽다는 것이 꼭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건 아닌 것 같더라고요. 단순히 퇴사하고 싶어서, 도시가 싫어서 시골에 오게 된 것도 아니고요. 오히려 그때그때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게 용기 있는 삶이 아닐까 생각해요. 어떤 일을 하기 위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내리는 것보다는 또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거기에서도 각자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어른스러운 것이 아닐까요? 만일 회사를 그만두고 여기에 왔거나 서울이 복잡하고 지겨우니까 여기에서 단순하게 살겠다고 생각하고 왔으면 금방 힘들어졌을 것 같아요. 도망치는 마음과 다른 걸 선택하고 싶은 마음을 잘 구분하는 것이 그래서 중요한 것 같아요.”

(유튜브 <오느른> 채널 운영자 최별 PD 인터뷰 중에서)


맞는 말이다. 도망치는 마음은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다. 직장인은 자기 주도적으로 시간을 쓸 수 없는 것이 현실이지만 꼭 회사에서 도망치고 나서 뒤늦게 준비하면 더 방황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금융그룹에서 만든 '대한민국 40대가 사는 법'에서 어쩌다 어른이 되어버린 40대의 인생 과제를 첫 번째 은퇴자산 마련, 두 번째 내 집 마련, 세 번째 자녀교육, 마지막 네 번째 자기 계발로 꼽았다. 이 순서가 설문에 응답한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순서지만 실제로는 자녀 교육비 지출과 주거 안정성 확보를 위해 은퇴자산 마련을 위한 저축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40대의 56%가 주택을 소유하고 있지만 평균 1억 1천만 원의 대출 잔액이 있으며 자녀들이 성장하며 앞으로 더 큰 주택으로 옮겨야 해서 무주택자나 유주택자나 집값 걱정은 매한가지다. 퇴직을 코앞에 둔 50~60대보다는 아직 발등에 불이 떨어지지 않아서인지 몰라도 자기 계발은 후순위다. 그렇기 때문에 향후 창업할 생각은 있으나(48%) 구체적인 창업 계획까지 수립한 비중은 겨우 7%에 불과하다.


출처 : 하나금융그룹 '대한민국 40대가 사는 법'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가장 막막했던 것이 월급 받는 생활 말고 다른 돈벌이 수단을 내가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를 읽고 노동이 아닌 자본이 일하게 하는 시스템은 만들어야겠는데, 그 준비가 나는 아직 되어 있지 않았다. 무작정 회사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만이 능사가 아니다. 내가 꿈꾸는 삶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삶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오늘도 회사에서 도망치고 싶은 40대여. 내가 꿈꾸는 삶이 과연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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