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이천도자예술마을에 다녀왔다. 도자기 축제 기간이라 매장 한편에 B급 제품을 판매하거나 정상 제품을 할인해서 판매하기도 하고 도자예술마을 도로 곳곳에 천막부스를 차려놓고 아주 저렴하게 파는 그릇도 많다. 하지만 그 많은 그릇 중에서 정작 내가 원하는 디자인의 그릇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릇을 좋아해서 한때는 직접 만들기까지 했던 나는 그릇이 무작정 값이 싸다고 좋아 보이는 시기는 지난 지 오래다. 그릇은 쓰임이 있는 물건이기에, 그리고 내가 만든 음식을 담아내는 것이기에 날이 갈수록 더욱 신중하게 고르게 되는 것 같다.
도자예술마을 매장 한 두 곳을 돌아보면 신기하게도 가장 먼저 느끼는 것이 사람의 취향이나 미적 기준은 만드는 이나, 쓰는 이나 정말 모두 다 다르다는 것이다. 특히 이곳은 한 명의 작가가 매장 하나를 통으로 운영하는 경우가 많아 하나의 매장에 수많은 형태의 그릇이 있어도 단 한 가지의 분위를 풍기는 그릇만 판매하고 있는 것이 무척 흥미롭다. 그 많은 그릇이 색감이나 전체적인 느낌이 모두 비슷하다. 특히 꽃이 붙어 있는 그릇을 만드는 이는 크든, 작든 모든 그릇에 꽃을 붙여 놓는다는 재미있는 사실.
요즘 내가 좋아하는 그릇은 최대한 자연의 색을 내는 그릇이다. 백자처럼 순결하지도, 고운 유약을 발라 반짝반짝 광택이 나지도 않는, 흙에서 온 느낌이 살아있는 거칠고 투박한 표면을 갖고 있지만 디자인은 현대적이고 세련된 느낌의 그릇이라고 해야 하나. 그리고 무엇보다 음식을 담았을 때 더욱 돋보이는 그런 그릇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도자예술마을을 아무리 둘러봐도 쉽사리 그런 그릇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천막부스 한 구석에 작은 장식장을 채우고 있는 찻사발을 발견했다. 박물관에 가면 조선시대 생활 그릇 전시관에 있는 밥공기보다는 크고 국그릇보다는 작은 그런 그릇. 그동안 유심히 박물관에서 보고 마음에 품고 있던 그릇이 찻사발이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이날보니 찻사발은 내가 그토록 흠모하는 달항아리만큼이나 미적으로 아름다운 그릇이었다. 장식의 기능만 있는 달항아리보다 쓰임이 있기에 더욱 아름다워 보였던 것 같기도 하고 실제로도 전체적인 비율이 참 멋졌다.
이날 찻사발을 만든 작가분과 차를 마실 기회까지 얻었는데, 그릇 만드는 일을 업으로 하는 이와 처음으로 한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는 대단한 경험이었다. 이 작가는 찻사발과 달항아리를 만들며 사비를 들여 꾸준히 해외 전시를 나간다고 한다. 새로운 세상 놓인 나의 작품을 바라보는 객관적인 눈이 필요했던 건지 아니면 나의 아름다움을 알아줄 넓은 세상의 사람들을 만나기 위함이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작가는 몇 해전 일본 전시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전시 뒤풀이 자리에서 전시 기획자에게 "그 달항아리에 당신은 어디에 들어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앞으로의 방향을 정했다는 그. 그 뒤로 누구나 만드는 달항아리가 아니라 내가 만든, 나의 정신이 깃든 달항아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요즘 대부분의 도예가들이 달항아리를 만드는데, 크기를 아주 작게도 만들기도 하고 현대적인 느낌의 그림이나 텍스트를 넣기도, 때로는 금박을 붙이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가장 눈이 가는 것은 순백의 달항아리이다.
작가는 현재 티끌 한 점 없는 순백의 달항아리에서 조선시대 거친 백자 느낌을 살린 달항아리를 찾아가는 중이라고 한다. 나도 작가와 긴 대화 끝에 맨 처음 눈이 갔던 화려한 문양의 찻사발이 아닌 달항아리의 색감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만든 소박한 느낌의 찻사발 하나를 골라왔다. 흙과 유약의 조화를 찾아가는 그 과정에서 차올린 수많은 찻사발은 각기 다른 흰 빛을 내고 있었다. 나도 나의 일에 나의 정신을 담고자, 그 과정을 즐기고자 다짐한다. 정답은 없다. 인생은 나를 찾아가는 여정일 뿐이다.